유럽의 몰락과 남미의 부상, 아시아의 부진. 이번 월드컵의 특징이란다. 늘 아시아에 할당된 본선행 티켓이 너무 많다고 남미와 유럽에서는 불만이 많다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투덜거릴만 하다. 아시아 대표로 나선 우리나라, 일본, 이란, 호주 중 한 나라도 16강에 못 올랐고, 몇 몇 경기에서는 수준 이하의 플레이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제리에 졌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수준 차이가 나는 경기 운영을 했다는 것이 문제다. 일본도 콜럼비아와의 기량 차이를 숨길 수 없었다.)
경험과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을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왜 월드컵에서 별 볼 일이 없어졌을까? 이제 유럽 선수들은 국가대표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같다. 유럽 리그에서 이미 천정부지의 몸값을 하는 선수들에게 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선수들에게는 여전히 '국가'의 의미가 크겠지만 - 공연히 부상이나 당하면 다음 리그에서 뛰는데 지장 있고 연봉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텐데... 굳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우리나라 만세'를 위해 희생할 이유가 없다. 그나마 젊은 피로 완전히 물갈이 된 네델란드와 여전히 집단의 가치가 남아있는 -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 독일만이 선전하고 있다. (프랑스가 콩가루 아닌 것을 보면 좀 신기하다. 이유가 뭐지? 팀원들끼리 사이가 좋은가? 감독이 특별한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남미의 선전은 왜 그럴까? 이미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에게는 - 그 동안 유럽에서 당했던 설움을 자국 국기 앞세워 풀 수 있고 - 아직 가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유럽으로 불려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들에게 찾아온 유일한(?) 성공의 기회 아닌가? 열심히 뛸 수밖에 없다. 돈 받으며 유럽에서 축구를 하는 그들에게 국가에 '충성'할 수 있는 기회이며, 자국민을 하나로 묶어 고양시킬 수 있는 일이다. 존재감 없는 국가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 역시 그들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경험하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외국에서 뛰는 선수들에게는 모국 선수들과 뛸 때 느끼는 즐거움이 클 것 같다. 애국심도 생길 것 같고...) 브라질에서 경기가 열린 것도 남미 선전의 원인 중 하나이다. 홈 어드벤티지는 사실 매우 크다.
한국과 일본의 부진은 그냥 아직까지 따라가기 힘든 기량의 차이이다. 스타플레이어도 없고, 안정된 조직력도 없고, 창의적인 작전도 없다. 투지와 의욕만으로는 한 경기 이상 끌어가기 힘들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 이미 월드컵 대표팀의 감독들은 자유 시장 용병이다.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거의 백인이다. 아주 드물게 남미 출신 감독들이 있지만... 선수들은 이렇게 흑인이 많은데 감독은 모두 백인이라니... 아직 아프리카와 남미는 감독을 배출할 만한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인가? 우리나라도 홍명보 감독의 무능을 탓하며 외국 감독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외국인 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선수는? 아직 월드컵의 룰이 외국인 선수는 국가대표로 뛸 수 없다는데, 조만간 국가대표팀도 용병으로 채우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언제까지 월드컵이 국가대표 간의 경기로 유지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월드컵에서 국가대표가 사라진다면 그것이야말로 국가의 의미가 퇴색되는 때가 아닐지.
p.s. 미처 몰랐는데 같이 축구를 보던 어머니 " 콜럼비아는 6.25때 남미에서 유일하게 파병해 준 나라인데, 콜럼비아 응원해야지" 그러보고니 오늘이 6.25다. 콜럼비아가 우리나라에 파병을 해 준 나라였다니, 그리고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문득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간에는 절대 공유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 월드컵을 보면서도 - 들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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