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클라이번 콩쿨에서 우승했다기에 그런가보다 했다. 클래식 음악계에도 뛰어난 한국 젊은이들이 많아서 줄리어드에 가면 반이 한국 사람이라고 할 정도라 별로 새로운 뉴스가 아니었다. 뭐 그 중의 하나 매우 잘 치는 앤가보지 그랬다. 그런데 유튜브로 결선 연주 동영상을 본 후에 난 혼자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쟤, 뭐야? 접신했잖아. 사람이야?!"
클래스가 달랐다. 도저히 18세 콩쿨 우승의 신예같지 않았다.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으면서 소름, 전율, 눈물의 삼종 셋트를 경험했는데, 혹시 갱년기 증상인가, 내가 요즘 마음이 허했나 왜 이러지 그랬다. 감동의 눈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중년의 까칠한 아줌마였다. 하지만 이건 나이나 성별과 무관한 예술이 주는 감동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폭발적인 조회수와 댓글 내용, 한번도 클래식 음악을 듣지 않았던 지인들도 이구동성 이렇게 말했다.
"난 클래식 음악 듣는 사람 아니잖아. 호기심에 그냥 처음 들어봤다니까. 우승했다기에. 그런데 자꾸 듣게 돼. 그냥 감동적이라 눈물이 나."
임윤찬이라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18세의 순수 국내파 연주자이며, 한예종 학생으로 손민수의 제자이고,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시작했지만 일찍이 피아노에서 두각을 나타냈단다. 자폐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내성적인 성격이며, 스승 손민수 조차도 피아노를 치기 위해 태어난 사람같다고 할 정도로 피아노를 대하는 마음이 남다르단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인간이 피아노 소리로 사람들 마음을 저렇게까지 움직여? 철학적으로 음악을 대하는거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손민수의 스승인 러셀 셔먼이 건반위의 철학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조금 이해가 됐다. 좋은 스승에게 좋은 영향을 받은 훌륭한 제자였던게다. 열심히 공부를 할 자질과 자세가 된 학생에게 좋은 선생이 계속 지적 자극을 주며 성장시킨 셈이다.
지난 금요일 kbs 교향악단과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4번을 김선욱의 지휘로 연주했고, 그저께 월요일에는 정명훈의 지휘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단다. 어느 단원의 표현에 의하면 정명훈은 지휘가 아니라 감상하는것 같았고, 단원들은 - 어릴때부터 지겹도록 연주만 해 와서 음악으로 감동받아 눈물 흘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 -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임윤찬은 18세라 미래에 어떤 모습을 갖게 될지 변수가 너무 많아서 걱정스러울 정도이다. 학교에서 18세 아이들이 어떤지 알기 때문이다. 부디 바라건대 임윤찬이 건강한 심신으로 오랫동안 지금처럼 음악을 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는 공연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티켓팅 불가다. BTS보다 인기라 티켓 순삭. 나같은 사람은 구할 수가 없다.) 그런 날이 빨리 왔음 좋겠다.
임윤찬 연주 영상 댓글에 이런 글이 있었다. " 윤찬아, 공대 나온 형이다. 돈은 공대 나온 나같은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벌테니 너는 그냥 피아노만 쳐라." 딱 저런 마음이다. 진심. 임윤찬이 스승의 소속사에서 관리되고 있다는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삶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피아노를 지금처럼 즐겼으면, 그래서 훗날 호로비츠처럼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공연장에서 추앙받으며 연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쉽게도 난 그가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의 연주는 들을 수 없겠지만, 그와 동시대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p.s. 나와 임윤찬 이야기를 하던 친구 왈, "임윤찬 사위 삼고 싶다." 난 말했다. "위대한 예술가가 좋은 남편이 되긴 힘들걸. 호로비츠도 아내는 힘들었댄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일이니 그렇게 위안 삼아라. " 너무 어린 연주자라 변수들이 많아서 걱정스럽다. 결혼과 아내도 그 변수 중의 하나. (근데 내가 왜 그런 걱정까지 하고 있지?) 그가 지금처럼 딱 지금처럼 변하지 않고 그냥 자기 마음대로 막 연주했으면 좋겠다. 영혼을 바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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