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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사회선생 2022. 8. 12. 14:32

사랑의 감정이 아주 잔잔하게 진행되다가 최고조에 이르렀을때, 심장을 쿵 내려 앉게 하며 끝난다. 감정선만 따라 섬세하게 진행되는데, 그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러 끝나버리니 여운이 많이 남는다. 격정적이듯 잔잔하고, 빠른듯 더디게 느껴지는 전개 방식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감정만으로 두 시간 넘게 끌어가는 느낌인데 지루하지 않다는건 감독의 능력. 여운이 많이 남아서 어떻게든 정리를 해 보고 싶었다. 특히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1. '사랑할 결심'은 불가능하다. 결심한다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이 진행 중일 때 '헤어질 결심'은 필요하다. 그 때의 결심은 사랑하는 만큼 힘든 일이 된다. 그 고통은 사랑의 정도에 비례하기 때문에 서로 열렬히 사랑하고 있을 때에 그 결심은 때로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한다. 서래와 해준처럼. 

 

2. 사랑의 속성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며 일상 생활의 루틴을 깨뜨린다. 마약처럼 사람을 기분 좋게 취하게 하며 서서히 중독시킨다. 그리고 이성적 판단력을 약화시킨다. 뒷골목 양아치인 홍산오의 사랑이나 누구보다 모범적인 형사인 해준의 사랑이 따지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모두 사랑때문에 붕괴되었다.  

 

3. 사람들은 완전한 사랑, 완벽한 사랑을 이야기하며 꿈꾼다. 하지만 그건 마치 '뜨거운 얼음', '차가운 불' 만큼이나 호응이 안 되는 말이다. 완성은 다 이룬다는 종결적 속성을 내포하는 말인데, 사랑은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유동적인 인간의 감정 상태이기 때문에 완성될 수도 없고, 영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간혹 서래처럼 죽음으로 완성하려고 하지만 그건 '헤어지는 방법'일 뿐 사랑 그 자체는 아니다. 

 

4. 첫눈에 반하는 사랑도 있지만 서서히 스며드는 사랑도 있다. 해준은 서래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서래는 해준에게 서서히 스며든다. 왜 하필 그에게? 왜 그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서 많은 말을 만든다. '재밌어서. 착해서...' 하지만 그건 이성적인 척 포장할 뿐, 왜 그 때 그 사람에게 감정이 움직였는지 알 수 없다.  '나도 몰라. 그냥.' 그 때에 그가 내 앞에 있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사랑이라고 착각 혹은 위장한 채 사는지도 모르겠다. 

 

5. 사랑과 결혼이 항상 중첩되는건 아니다. 서래와 해준에게는 각각 배우자가 있다. 사랑이라고 느꼈을때조차 그들은 결혼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도덕하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은 사랑을 함으로서 사랑을 하는 그들이 가장 고통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데 행복하지 않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사랑보다 견고한 건 결혼이라는 제도다. 

 

6. 어차피 완전한 사랑은 없다는 걸 보여주면서도 '마침내' 완전한 사랑을 꿈꾸는 인간의 모습을 서래와 해준을 통해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감정의 정점에서 더 이상 관계가 유지되기 힘들 때, 관념 속에서 완전을 꿈꾸며 계속 진행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에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가끔 헤어진 그 사람과 살았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한다. 사랑의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봐야 지금의 배우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에 한표! ) 해준은 미종결 사건으로 서래의 사진을 걸어두고 서래를 찾아 늘 헤맬 것이다. 서래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은 진행된다. 서래가 사라짐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