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이어령 선생의 부고 뉴스를 보며

사회선생 2022. 3. 5. 18:35

내가 접할 수 있는 천재들은 대부분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에 내 기준으로는 과거형이었지 현재형이 아니었다. 대부분 실존 인물이 아니었고, 실존 인물이라고 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현재형 천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어령선생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였나. 신문에 연재되는 칼럼을 재미있게 읽었고, 그 분의 책을 찾아서 사서 읽었다. TV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특정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문학부터 문화인류학에 이르기까지 장벽을 넘나들며 대중을 상대로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언어를 기반으로 한 인간의 심리, 문화 등을 분석하는 것을 보면 그 발상이 얼마나 신선하고 논리적이며 설득력 있는지 늘 감탄하며 재미있게 봤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으로 시작된 이어령에 대한 나의 관심은 그의 근황과 최신 저서들을 찾게 만들었다. 최근에 신문에서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라는 제목으로 인터뷰를 하는 노회한 이어령선생을 보면서 투병 중에도 여전해 보이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살아 있어서 반가웠다. 책상에 7대의 컴퓨터를 놓고, 디지털 기기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다루며 끊임없이 창작 활동을 하는 80대의 지식인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인간의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그렇게 인터뷰 한 지 한 달 만에 이어령 박사는 그가 믿는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고 말았다. 세상의 이치에는 그렇게 해박한 사람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딸에게는 무관심하고 무심했던 애비였다는 것을 참회하며, 곧 먼저 하늘 나라로 간 딸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고 했던 그는 결국 눈을 감았다. 많은 사람들의 지적 여정에 큰 이정표가 되었던 큰 별 하나가 뚝 떨어진 느낌이다. 부디 영면하시길. 그의 지식에 대한 빚은 '선한 삶'으로 갚아야 할 우리들의 몫인것 같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선한 인간이 이긴다는 것, 믿으라” 이어령, 넥스트 - 조선비즈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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