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때문에 줌을 활용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재택 근무도 장려하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가능하면 빈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재택을 하지 말란다. 교사들을 압박하기 위한 교육청 지침은 바이블처럼 지키는 학교에서 교사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교육청 지침은 절대로 대충 지킨다. (안 지키고 싶은데 대충이라도 지켜야 책임 회피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충'은 지킨다. )
우리 학교는 한 교무실에서 70명 가까이 근무하는데다가 교사들마다 수업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알아서 재택 근무를 하라고 하면 적당히 분산돼서 근무 인원의 1/3을 인위적으로 나누지 않아도 얼추 비슷하게 학교 근무 인원이 확보된다.
그런데 학교 차원에서 지침에도 없는 재택근무 총량제를 시행하겠다며 열흘 동안 24시간 이상 재택 근무를 하지 말란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재택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형평성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란다. 같은 돈 받으면서 업무때문에 재택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재택을 하는 사람들때문에 위화감과 갈등이 발생한다나? 어이가 없다. 평교사와 부장교사 간의 경쟁을 통해 부장교사들에게 성과급과 비담임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학교이다. 담임을 하는 사람들만 죽어라 담임을 시켜대서 담임도 총량제로 하자, 어떤 사람들은 늘 비담임의 혜택을 받고 누군가는 쉼없이 담임을 하고 있지 않냐고 하자 그건 그럴 수 없단다. 그런 그들이 정말 형평성에 관심이 있는걸까? 단언컨대 이는 형평성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내 눈 앞에서 근무하는 것이 관리자들 입장에서 편하기 때문이다. 정말 형평성에 관심이 있다면 재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 주면 된다.
학교도 이런데 기업은 얼마나 심할까? 내 돈으로 월급 주는데 집에서 쉰다고? "할 일 없어도 내가 필요할 때 불러야 하니까 내 눈 앞에 딱 앉아 있어!"라고 하고 싶은데 교양있게 말한답시고 "재택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형평성 차원에서 재택을 못하게 하는 거야." 한국의 노동 시장이 얼마나 후진지, 노동자들이 얼마나 가혹하게 이용되는지, 관리자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본전 뽑으려고 하는지 보인다.
지인의 조카가 오스트리아의 스와로브스키 본사에 취업이 돼서 열심히 일해 보겠다고 퇴근 이후에도 남아서 일을 하고 자기 일이 아닌데도 도와준답시고 여기 저기 다니며 일을 하고 그랬단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팀(?)으로부터 장문의 이메일을 받았단다. 내용인즉, 회사 일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일과 네 삶의 균형을 맞춰라. 하루 이틀 일 할 거 아니지 않냐, 우리 회사는 너의 삶을 존중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나? 한국에서 열정페이로 인턴 생활도 했고, 알바도 했던 그녀는 처음에 자기가 뭐 잘못 읽었나 그랬단다.
우리네 조직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는데 너희들은 뭐하는거냐? 더 열심히 해라." 아직 선진국 되려면, 사람이 먼저인 사회가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건 내가 무능한 노동자라서 그런걸까?
'교무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 교원 성과상여금 차등지급 자가 채점표(2021지급) (0) | 2021.02.01 |
---|---|
성과급을 담임 수당으로 (0) | 2021.01.17 |
시험문제를 만들기 위한 개념(사회문화교과의 문제) (0) | 2020.12.17 |
어느 시의원의 사회적 가치 교육 (0) | 2020.12.08 |
연극과 수행 평가 유감 (0) | 2020.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