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시험문제를 만들기 위한 개념(사회문화교과의 문제)

사회선생 2020. 12. 17. 09:00

가까운 사회과 교사들이 몇 있다. 그 중 한 명인 동료 교사에게 질문을 받았다. 세대 내 이동에서 수평 이동은 일어날 수 없는거냐고, 즉 세대 내 이동도 수평 이동과 수직 이동으로 하위 범주화 할 수 있는게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난 지금까지 세대 내 이동과 세대 간 이동을 수직이동의 하위 범주 쯤으로 생각하고 가르쳤다. 즉, 계층적 지위 변화가 일어날 때 비로소 세대 내 혹은 세대 간 이동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계층적 지위 변화란 수직이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슨 이론서나 논문이나 원서에서 본 개념이 아니었다. 완전히 상식적으로 내 맘대로 추론한 것이다. 세대 내 이동이나 세대 간 이동이라는 개념은 개인의 계층적 지위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며, 수직 이동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고. 관노비가 사노비가 됐다고 해서 이를 세대 내 이동이라고 봐야 하나? 관노비가 상궁이 됐다고 해야 세대 내 이동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근본적으로 사회문화 교과에 회의가 든다. 학문적 오류가 많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개념을 정립한 사람의 의도와 다르게 개념이 산으로 가고 있다고나 할까? 섬너가 말한 소속감은 내가 속해있는 집단이라는 의식인데, 그럼 속해 있어도 속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속해있는 집단이 외집단이냐고 묻는다. 섬너가 그런 비정상적인 사람들까지 염두에 두고 개념을 만들었겠는가? 단지 자신이 속하고 싶어하는 집단은 있을 수 있으니 준거집단이라는 개념을 만들었겠지라고 답변하고 끝내지만 이 역시 끝없이 질문을 받는다. 온갖 참고서와 문제집에 소속감이 기준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 소속감이 있거나 없거나인데, 소속감이 없다고 해서 적대감을 갖는 것은 아니라 내집단 아니면 외집단이라는 경계의 구분이 어려워진다. 중간 영역이 존재하고, 이를 상쇄해 주는 개념이 준거집단이다. 따라서 내집단은 내가 속해있는 집단, 외집단은 적대감을 가진 집단(실제로 외집단의 개념이 정립되며 내집단이 형성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속하고 싶은 집단 정도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하건만 내집단과 외집단을 배타적으로 구분하면서 소속감이라고 표를 만들어 제시하니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회문화 교과의 오류 중 하나는 이처럼 학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개념을 왜곡하여 '시험 문제를 만들기 위한 개념' 정립을 해 나간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퇴니스는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를 구분할 때 본질의지와 선택의지라는 개념을 사용했는데, 이는 사실 매우 철학적인 개념이다.  당시에도 많은 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회문화 교과에서는 자연발생적이냐 아니냐로 자신이 속한 집단을 구분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가족은 공동사회, 학교는 이익사회라고 배운다. 정말 그런가? 왜 2020년 현재에도 왜 대한민국의 많은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이 개념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 사례까지 외워야 하는가? 정말 가족이 자연발생적인가? 부부가 자연발생적인가? 웃기는 사례를 나도 웃기지 않은 척하며 밑줄 쳐 가면서 가르치고 있다. 이런 개념적 오류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차라리 펼쳐 놓으면 훨씬 좋은 공부가 될 거 같은데 말이다.   

교과서를 쓸 때에도 이런 개념을 이렇게 배타적인 표로 만들어서 구분하는 방식이 맞냐고 이의 제기하며 너무 시대착오적이라고 빼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교육과정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인지 이런 개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넣고 있다. 수능 출제할 때에도 개념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사례를 만들어 가면서....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키려면 차라리 개념을 펼쳐 놓고, 그 개념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이해시켜야 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집단들을 어떻게 분류하는 것이 적절한지 '생각'하게 해야 한다. 가족이 공동사회인가, 이익사회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런 공부들이 훨씬 의미있는 사회문화 공부가 될 거 같은데... 늘 나만의 생각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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