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박지선...

사회선생 2020. 11. 4. 12:19

대학교 때 쯤이었다. 쇄골 부위의 피부에 딱 100원짜리 동전 면적만한 분포로 좁쌀같은 것들이 돋았다. 통증은 없었지만 매우 거슬려서 동네 피부과에 갔더니 서울대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받아 보란다. 서울대병원에서는 단순 비립종이라고 크기의 변화가 갑자기 나타나는게 아니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제거해 달라고 했더니 그 부위는 피부가 너무 얇아서 레이저로 요철을 없애도 붉은 반점처럼 흔적이 남아 흉터처럼 보일거라며 그냥 두는게 나을거라고 했다.

그러나 몇 년 후 주근깨가 많아져서 피부과에 갔다가 의사의 권유로 - 서울대병원에서 들은 말을 하는 나에게 피부과 의사는 생각보다 그리 붉지 않을거라며 요철을 없애는게 더 보기 낫다며 나를 설득했다. - 쇄골 피부의 비립종을 없애는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붉은 반점 하나가 쇄골에 선명히 드러나는데 차라리 자세히 봐야 아는 비립종이 나았다. 그 의사는 실력없는 돌팔이였던거다. 얼굴에도 주근깨 없애달랬는데 무슨 과잉 시술을 했는지 정말 한 동안은 햇볕을 받으면 눈 주변이 붉어지며 당기고 아파서 힘들었다. 하지만 만일 진짜 얼굴 한 복판에 붉은 반점이라면, 얼굴 전체가 빛만 쏘여도 벌겋게 붓고 통증이 심했다면 분명히 삶이 달라졌으리라...

박지선의 자살 소식을 듣자 갑자기 오래 전 그 경험이 생각났다. 들리는 말로는 박지선이 피부 질환으로 괴로워하다가 우울증까지 와서 자살한거 같단다. 매우 괜찮은, 우리 옆에 오래 머물러 주었으면 더 좋았을 코메디언이 떠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안 좋은데 그녀가 잘못된 시술로 오랫 동안 괴로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화가 났다.

듣기로는 그녀가 고등학생 시절 여드름으로 고생하다 이의 치료를 위해 박피 시술을 6번이나 받았고, - 돌팔이였을거다 - 이후에 피부가 약해지며 문제가 심각해졌다는거다. 햇볕알레르기가 심해져서 햇볕 뿐 아니라 조명에도 힘들어했단다. 화장도 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피부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없지만 지나친 박피가 피부의 방어 능력을 완전히 망가뜨린게 아닌가 짐작한다. 그리고 결국 그게 시발점이 되어 그녀를 죽음으로 몬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사람들 앞에서 조명 받으며 관객들을 웃기는 데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에게 암막 커튼 친 방구석에서의 삶은 견디기 힘들었을거다. 겸손하고 선량하고 밝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이 있어도 웃음을 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망가지며 오히려 그들을 높여주는 사람이었다. 난 외모를 비하하는 개그를 결코 좋아할 수 없지만 그녀의 생활 속 관찰에서 나오는 할머니와 아줌마 개그를 정말 좋아했다. 부디 평안하기를... 덕분에 많이 웃었다고,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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