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억울한 계모들과 김여사들

사회선생 2013. 11. 24. 19:13

 얼마 전 계모가 딸을 구타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엽기적인 기사가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 기사를 본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계모는 그래서 안 돼.'... 이미 그 기사가 내려준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믿고 싶어하는대로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고, 기사는 스토리가 있는 극적 사건을 좋아하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사건보다 더 불편하고 비논리적인 결론이다. 그와 같은 사건에서 가해자는 '폭력성'을 가진 '정신이상자'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즉, '계모'라는 사실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니라 원래 비정상적인 인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굳이 '계모'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사건이 극적으로 부각되며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동 학대 사건 조사 결과에 의하면 가해자의 비율은 친부, 친모, 계모, 계부의 순이다. 친부에 의해서 행해지는 아동 학대가 가장 많고 실제로 계모에 의한 학대 건수는 매우 미미한 비율이다. 또한 다른 조사 결과를 봐도 계모 중에서 자녀를 폭행하는 비율보다 친부 중에서 자녀를 폭행하는 비율이 더 높다고 한다. 그런데 기사화 되는 것은 대부분 '계모' 혹은 '계부'에 의한 사건이다. 극적 스토리를 좋아하는 대중들의 취향과 언론사의 상업성이 맞아 떨어지는 보도 행태다. 대중은 친부나 친모에 의해서 아동폭행이 일어나면 '교육상 체벌'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때문에 기사화되어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똑같은 폭행이라도 계모나 계부에 의해서 일어나면 '의도적 학대'라고 믿고 싶어하며 큰 관심을 갖는다. 백설공주와 콩쥐팥쥐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세대에게 '사악한 계모'는 여전히 재미있는 이야기꺼리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보도행태는 왜곡된 정보를 사실처럼 믿게 할 가능성이 높다. 재혼가정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에서, 그리고 실제로 선량한 계모들이 사악한 계모들보다 훨씬 많은 사회에서 이는 자칫 편견으로 이어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도 아닌 것을 사실인양 믿게 하여' 상처를 줄 가능성이 높다.

 이와 유사한 행태는 또 있다. 이른바 '김여사의 운전'이다. 남성 운전자가 여성 운전자보다 많고, 교통사고 역시 남성 운전자가 훨씬 많이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운전자들은 억울한 김여사가 되어 교통사고 상습범으로 전락된다.  통계에 의하면 남성운전자의 사고율이 여성운전자의 사고율보다 훨씬 높으며 대형 사고는 남성 운전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남성 운전자의 사고는 별로 기사화되지 않지만, 여성 운전자의 사고는 '그래서 김여사는 안 돼. 여자는 운전을 못 해.' 라며 인구에 회자되고 기사화된다. 보도에서도 '여성운전자'를 강조한다.

 편견이 있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은 사회이다. 언론은 대중이 믿고 싶어하는대로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편견을 갖지 않도록 보도해야 한다. 그런데 계모에 의한, 여성 운전자에 대한 사건을 보도하면서 그들은 '사실대로'라고 이야기하겠지만, 이미 그 사건만을 '선택'한 것이 그들의 편견이다. 그 기사의 말미에 실제로 계모에 의해 아동학대가 이루어지는 비율은 친부나 친모에 의해 행해지는 것보다 훨씬 적다는 '진실'이라도 제대로 알려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P.S. 여전히 여성은 편견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또한 불편하다. 계모도 김여사도 모두 여성아닌가? 자기 아내가 정신병자여서 아이를 때리는 것을 보면서도 방조하는 남편도 싸이코 아닌가? 아무리 봐도 그 역시 공범자이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