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에서 학생들이 삼삼오오 그룹이 형성되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것이 딱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동기로 친해지게 되었든지 간에 친해지면 매우 유사한 행동 양식을 보이게 된다.
인간 관계는 욕하면서 친해진다고 하던가? 인간은 좋아하는 사람이 동일할 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동일할 때 그들끼리의 그룹이 형성되고, 친해지기 쉽다. 원래 ‘내집단’은 ‘외집단’이 형성되어야 비로소 자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인식을 별로 하지 않다가 막상 타인이 우리 가족을 매도할 때, 혹은 우리 가족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가족애가 불끈 생기는 것과 같다. 적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 혹은 집단이 있을 때 결속력은 더욱 강해진다.
이런 속성 때문에 자신이 속한 조직(?)의 결속력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혹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타인을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난도질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화자(話者)는 ‘친하니까 이런 말을 하는거야’ 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제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청자(聽者)는 강한 동조와 긍정의 추임새를 통해 ‘나는 너와 친해. 나는 의리가 있어.’ 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뒷담화는 인간들의 취미(?) 생활 중 하나였다. 나랏님이 없을 때에는 나랏님 욕도 한다는 옛말이 있지 않는가? 뒷담화는 대화의 적당한 양념 역할을 한다.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이와 같은 비생산적인 말들은 공허하다. 또 이런 것을 친밀성과 의리의 척도로 생각하는 것은 유치하다. 화자(話者)에게 감정적 위안과 정서적 위로가 될 지는 모르겠으나, 과격한 뒷담화는 스트레스 해소에도, 문제 해결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래 과격한 표현에는 거부감을 강하게 갖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불편해진다.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 앞에 혹은 맨 끝에 덧붙이는 말, “이건 비밀이야. 절대로 너(혹은 너희들)만 알아야 돼.” 그런데 사실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아는 혹은 친한 사람들에게는 다 말하고 다닌다. 소문이 나면 자신이 퍼뜨린 줄은 모르고 타인이 퍼뜨렸다고 착각한다. 물론 타인이 그랬을 가능성도 있지만,....어쨌든 세상에 ‘너만 아는’ 비밀이란 있을 수 없다. 발설하는 순간 이미 공공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 타인의 험담을 할 때에도 수위 조절해 가며 적당히 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이니 하지 말라고는 못하겠다. 나 역시 자신없으니까.) 과격하고 천박한 표현은 자제해 주길! 나 역시 도마 위에서 비인격적으로 난도질당하는 생선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누군가의 뒷담화를 육두문자를 써 가며 과격하게 하는 사람을 보면 말하고 싶어진다. “당신의 인격은 완전하신가요? 수위 조절을 좀 하시지요.”
그리고 하나 더, "저 당신이랑 안 친해도 좋으니 과격한 뒷담화는 좀... 그냥 사실만 있는 그대로 전달해 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가치 판단은 제가 나중에 알아서 할게요."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교사가 남교사보다 많은 이유 (0) | 2013.10.30 |
---|---|
대졸자가 환경미화원이 되려는 이유 (0) | 2013.10.28 |
꽃뜰에와 꼬뜨레의 차이 (0) | 2013.10.09 |
싸움 구경이 싫다 (0) | 2013.10.08 |
커피가 뜨거우시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0) | 2013.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