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지금 너희가 보는 교과서의 모든 글자가 한자라고 생각해봐. 머리에 쥐 나지? 아마 그러면 이 교실 40명 중에서 한 3~4명은 문맹, 10명은 간신히 문맹에서 벗어난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20명 정도? 적어도 너희중에 문맹은 없잖아. 머리가 좋아서? 글이 쉬워서 그런거야. 정말 대단한 발명 아니니? 세종대왕께 감사하자"
문화 단원에서 상징을 배울 때 늘 하는 말이다. 학생들은 아주 깊이 수긍한다. 한글의 우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우리 문자는 수 백 년 동안 철처하게 버려져서 이렇다 할 만한 이름조차 없었고, 그러다보니 문법 체계나 어휘 등을 제대로 정리해 놓은 책들도 시대별로 나온 것이 없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말을 못 쓰게 하자 그 때부터 '한글'이라는 명칭도 얻고, 국어 사전이 발간되는 등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니...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요즈음 문법 파괴 현상을 보면 마찬가지로 안타깝다. 법칙이 파괴되는 것은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꽃뜰에'라는 문자를 보면 누구나 의미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소리나는대로 '꼬뜨레'라고 쓰면 이게 무슨 말인지 생각해야 한다. 앞뒤 맥락이라도 알면 끼워 맞춰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을 옮겨 놓은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학생들은 너나 없이 무분별하게 소리나는대로 쓴다. 편리하다고 한다. 물론 언어도 시대에 따라 변화될 수 있지만, 이와 같은 문법 파괴는 우리 문자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문자라는 것은 누구나 그 문자만 보고도 뜻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기호 아닌가? 소리나는대로 쓰는 것은 맥락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의미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자로서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학생들은 발음과 억양에 매우 신경을 쓴다. 그래서 원어민에게 배워야 하고, 끊임없이 소리를 들으며 익혀야 한다. 문법 공부는 어떤가? 이게 문법에 맞네, 안 맞네 자기들끼리 논쟁을 벌인다. 하지만 난 학생들의 대화 속에서 우리 말을 두고 '너 그 말 발음이 이상해. 그건 문법에 맞는 말이 아닌 것 같아. 이 건 장음이야, 단음이야? 이거 맞춤법이 맞는거야?' 이런 말을 들어 본 적도 없고, 틀려도 틀린 걸 아는 학생을 별로 본 적도 없다. "훼손된 후에야, 혹은 잃은 후에야 내 것이 소중한 것이었음을 아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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