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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꿀꿀이'보다는 그냥 돼지갈비집이 낫다

사회선생 2013. 9. 27. 22:00

 

 얼마 전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본 돼지고기 식당 간판이 인상적이었다. 앙증맞고 귀여운 새끼 돼지 캐릭터가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식당 이름은 ‘불타는 꿀꿀이’ 얼핏 보니 그 귀여운 새끼 돼지는 불판 위에서 미소 지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아니, 식당이라면 식욕을 돋우는 간판이나 이미지를 활용해야지, 어떻게 저렇게 귀여운 돼지를 맛있게 먹으라고 하는 것일까? 나의 상식으로는 귀여운 꿀꿀이 캐릭터를 보면서 사람들이 입맛을 다시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보신탕집 간판에 구피나 스누피를 그려놓았다고 상상해보라.

그러고 보니 사회 교과서에 나온 횡성한우 캐릭터도 그랬다. 한우 소비를 촉진시켜 축산 시장을 활성화시키려는 의도에서 친근감 있는 캐릭터를 고안했나보다. 캐릭터는 인간 대부분 혐오스러워 하는 쥐 같은 동물조차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하니까... (미키마우스를 떠 올려보라.) 그런데 횡성한우의 캐릭터가 정말 한우 소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지는 의문이다. 일단 그 캐릭터 때문에 사람들을 매장으로 끌어들이고, 방금 전에 본 이미지는 사라진 후 ‘포식자’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소고기’를 사 가야 하는데, 나는 내가 사는 소고기가 방금 전 내가 봤던 저 귀여운 송아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고 싶었던 마음도 사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 ‘저렇게 귀여운 녀석을 어떻게 잡아먹어?’

 난 문득 인간이 원래 채식동물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곳니보다 어금니가 발달한 것도 그렇고, 돼지나 소의 실체 혹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를 보면서 식욕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문화적인 영향일 가능성도 크지만, 인간은 축사에 우글거리는 소나 돼지를 보면서 ‘맛있게 생겼다’고 침을 흘리지는 않는다.

 물론 나도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사람들에게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마음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캐릭터를 육식문화에 이용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폭력’과 ‘포식자’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P.S. 지금 한우 농가도 공급과잉으로 매우 힘들다던데... 차라리 고급화 전략을 고수하며 공급량을 줄이는 편이 농가들에게도 이익이 아닌지?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질 좋은 고기를 적게 먹는 편이 건강에 좋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