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난 고3 학생들의 기말고사 기간이다. 그런데 학급마다 무단 지각, 무단 결석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수시 면접 시험때문에 결시하는 학생들도 많다. 시험을 보는 학생들도 학기 중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평소에 진지하고 성실했던 아이들조차 빈 손으로 와서 답안지를 무성의하게 대충 채우고 간다. 오랜 시간 수능을 향해 달려왔으니 이제 의욕도, 기운이 빠져 시험 문제를 읽는것조차 귀찮아진 것이다. 도대체 이와 같은 기말고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저히 변별력을 갖지 못하는 - 순전히 응시자들의 태도때문에 - 무의미한 시험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또 출결 처리는 어떤가? 예체능계 학생들은 이제 학원에 가서 실기에 올인하겠다고 학교에 등교하지 않겠단다. 또 논술 시험이나 면접 시험을 앞둔 학생들도 학원에서 준비를 하겠다며 보내달란다. 사교육을 위해 공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잡을 명분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수능 이후의 학교에서는 수업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답이 부모의 동의서와 학원 수강증을 제출한 후 학교에 들렸다 학원에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출석으로 인정해 준단다. 학교마다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이 대학가기 위해 학교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데 막을 수 있을까?
이처럼 수능 이후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학교 붕괴 현장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듣기로는 중학교 기말 고사 이후에도 유사하단다. 외고와 과고 갈 학생들은 등교하지도 않고 사설 학원으로 등하교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흥미도 관심도 별로 없다. 그저 학교를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수업 자체가 불가능한데 잡고 있는 것도 무의미하다. 대부분의 학교들 상황은 유사하다. 공공연히 오전까지만 학교 프로그램이 운영되지만 출석부에는 오후까지 수업을 한 것으로 담임들이 알아서(?) 기재해야 한다.
이제 고3 교육 과정과 학사 일정을 비정상적인 현재의 체제에서 정상적인, 운영 가능한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수능을 조금 뒤로 늦추고, 수능을 마지막으로 고등학교의 정상적인 학사 일정이 마무리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입시 - 수시 모집과 정시 모집 모두 - 는 모두 수능이 끝난 이후에 해야 한다. 논술과 면접 시험도 학기 중에 실시하지 말고, 수능이 끝난 다음에 해야 한다. 학생이 내신과 수능을 모두 산출해서 객관적으로 비교 판단 평가해서 응시하도록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그렇게 하면 학생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할거고, 그건 성적 여부를 떠나서 학생들이 학습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의 모든 성적이 반영되어야 하며 - 3학년 2학기 성적은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 학사 일정을 끝낸 후 입시 체제로 들어가야 한다.
출석은 안 하는데 출석한 것으로 해주고, 수업 일수에 잡혀있는데 수업은 하지 않는 이와 같은 비정상적 학사 운영은 학생들에게도 학교에도 교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상도 아니고 비정상도 아닌 카오스의 상태가 현재의 고3 교실이다. 이제 진지하게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학사 운영 일정에 대해 논의할 때이다.
p.s. 교육청에서 공문이 왔단다. 고3 수업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라고. 교육청의 공문은 책임회피용에 불과하다. 이미 실효성을 상실한 정책은 정책으로서의 생명을 다 한 것이다. 이제 정상적인 고3 수업 운영을 위한 현실적인 학사 일정과 입시 일정을 논할 때이다. 학교는 교육청이 아무리 지시해도 더 이상 학생들을 잡아 놓을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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