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만일 중·고생인 딸이 있다면, 그 딸이 소녀시대처럼 예쁘다면, 다들 연예인 시키라고 주변에서 부추긴다면, 기분은 좋겠지만 난 절대로 댄스 가수는 안 시킨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아직 미성년자인 소녀가 무대 위에서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 선정적인 춤을 추어야 한다는 사실도 싫고, 그로 인해 대중들에게 성적인 대상으로 보여지는 것도 싫다. 미성년자인 소녀들을 섹시하게 포장해 돈을 벌려고 하는 기획사나 우리의 대중문화 풍토를 수용하기 힘들다. 그들은 자신들 덕분에 한류에 성공했고 소녀들의 자아실현이 됐다느니 어쩌구 하겠지만, 돈 벌었다고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것이 아니며, 소녀들의 자아 역시 돈과 성을 추구하는 대중문화가 만들어 놓은 왜곡된 자아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연예인이 되어 운이 좋아서 큰 인기를 얻었다고 쳐도 반가울 것이 없다. 조로(早老)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10대에 일확천금을 벌어 그것으로 평생 쓰면서 살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인생의 행복이 돈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전성기를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경험하고, 그 이후에 쇠락할 수밖에 없는 직업은 아무리 봐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인기로 먹고 살았던 사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30대만 되어도 퇴물 취급 받는 댄스 음악계에서 청소년기에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바람직한 인생관을 갖지 못한 채 생각없이 무대에만 올인한 소녀들에게 남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간혹 학생들 중에 연예인이 되겠다고 연기 학원 다니고, 춤이나 노래 배우러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나는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춤과 노래가 정말 좋냐고, 그리고 네가 잘 하냐고. 좋아하기만 하는거면 그냥 취미로 즐기고, 잘 한다면 도전해 보되 인기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 하지는 말라고. 인기와 돈과 명예는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을 의미 있게 여기고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시작해 보라고. (하지만 내심 조금 더 성숙한 후에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크다)
약육강식의 시장경제 원리가 가장 완벽하게, 예외없이 돌아가는 곳이 연예 시장인데, 왜 많은 소년, 소녀들은 자신을 밀림 속에 던지려고 할까? 쇼비지니스는 화려한 면보다는 어두운 면이 더 많다는 것을 그들이 알 리 없다. 어린 소년, 소녀들을 연습생으로 묶어 놓고, 연습시키고, 데뷔시키는 현재의 연예 기획사 시스템은 일본과 우리나라 정도라고 한다. 아, 이것도 한류 상품의 하나로 동남아도 진출하고 있다고 하던데... 이것이 바람직한 시스템인지 여전히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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