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조회 종례 시간에 웃음이 사라졌다. 수시 모집 때문이다. 학생들과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다가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는 때가 왔다. 3학년 2학기 초, 수시모집상담을 할 때이다. 학년 초에는 늘 웃는 얼굴로 "열심히 해 봐. 잘 될거야." 이랬다가 막상 원서를 써야 할 시점이 되면 "안 돼. 거긴 합격 가능성이 없어. 조금 더 낮춰야 돼." 이래야 한다.
처음부터 네가 갈 수 있는 대학은 최대한 이 정도라고 상한선을 정해주는 편이 나았을까? 학생들이 희망하는 대학과 그들의 성적 간의 괴리는 커도 너무 크다. 상담은 이 괴리를 줄여 합격 가능성을 높여주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학생 입장에서는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담임이 야속할거고, 담임 입장에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학생이 답답하기만 하다. "얘들아, 가고 싶은 대학 말고 갈 수 있는 대학을 써야 합격할 수 있어. 대학은 성적으로 가는거야." 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학생들은 모두 자신만은 예외가 되어 '입시의 전설'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간혹 "저는 내신 4.5등급인데 입학사정관으로 경희대에 합격했어요." 이런 성공 사례가 드물게 있지 않은가? 그런 신문 기사를 보면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 4.5등급과 경희대만 연결한다. 합격한 학생이 어떤 스펙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준비해서 붙었는지는 보려하지 않는다.
급기야 오늘 종례 시간에는 화를 냈다. 수시상담을 하겠다면서 희망대학을 써 온 걸 보니 이건 상담이 아니라 설득의 시간이 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한 명이라도 대학에 붙여야겠다는 절실함이 있는데, 학생들은 '붙으면 좋고 떨어지면 할 수 없고' 의 태도로 수시에 임하는 것 같다. 강북의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수시로 대학에 가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 정시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수 역시 권하기 어렵다. 경제적 어려움은 둘째 치고, 기초 실력이 미비한 학생의 경우에는 재수한다고 해도 학원의 이윤 창출에만 기여할 뿐 성적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시 떨어지면 정시가고, 정시 떨어지면 재수하죠 뭐”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답답하다.
그러다가 문득 학생이 원하고 학부모까지 그렇게 나오면 굳이 애써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대학이야 나중에라도 자신이 가고 싶어질 때 가면 되지 않는가? 자신의 진로가 확실하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 더 생각해 볼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남들보다 좀 늦게 대학 간다고, 혹은 안 가고 자기 일 한다고 무슨 문제이랴. 대학 진학에 대한 입장은 학생 개개인의 성향이나 진로 희망이나 가정 배경 등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이를 교사가 정해주기는 어렵다. 게다가 요즈음은 웬만한 입시 사이트를 통해서 학부모와 학생도 교사만큼의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은가? 교사가 입시 정보를 독점하는 시대도 아니고... 부모와 학생이 결정하고 교사는 그에 대해 조언을 해 줄 뿐이다. 화 내지 말고 지도하리라 다짐하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난 조언자일 뿐 결정은 너희가 하는거야. 너희가 원하는 대로 쓴다면 난 말릴 수는 없어. 하지만 내가 동의하지 않는 대학에 진학한다고 할 때에는 추천서는 못 써주니 그건 명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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