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칙은 학교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범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보다는 학습을 위해서 기타 욕구를 통제하기 위한, 혹은 집단 생활의 일체감을 강조하기 위한 규정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예를 들어 머리 염색을 하거나 화장을 한 것은 엄격한 처벌을 받지만 - 학교에 아직 금발로 염색하거나 가발 쓰고 등교한 학생은 없다. 가끔 상상한다. 누군가 그렇게 하고 오면 어떻게 될까? 징계는 물론이고, 학교의 전설로 남아 회자될 것이다. - 학교 기물을 파손하거나 낙서를 하는 등의 행동은 규정에조차 없다. 욕을 하거나, 침을 뱉거나, 수업 시간에 핸드폰을 울리게 하거나 사용하는 등의 행위는 ‘머리 염색’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인데도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화장하고 염색하고 파마하기 시작하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통제해야 한단다. 학교에서 보면 화장하고 염색하고 파마하고 다니는 학생 중에 공부 잘 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게 됐는지, 그러다보니 공부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는지, 애시당초 공부와 외모 꾸미기와는 상관 관계가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제 교칙은 ‘학습만을 위해 다른 모든 욕구 통제’에서 벗어나 ‘타인 존중’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따지고보면 학생 인권 조례가 등장하게 된 것도 학교의 지나친 ‘개성과 욕구 규제’ 에 강렬히 저항한 ‘좀 노는 언니 오빠들’ 때문 아닌가? 헤어스타일이나 치마 길이, 양말이나 구두 모양을 규제하는 것은 이제 시대착오적이다. 그들의 개성과 취향 -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은 존중하되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공공 질서를 깨뜨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히 처벌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p.s. 종종 수업 시간에 말한다. “얘들아, 아름다움의 최고는 조화미야. 얼굴은 몽골리안인데 머리만 금발은... 좀 부자연스럽지 않니? 우리 그냥 생긴대로 자신감 가지고 살자. 그리고 개성은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내 다리 상태와 상관없는 핫팬츠 수용은... 무비판적으로 대중 문화를 수용하는 잘못된 태도 아닐까?” 나 역시 학생들의 취향은 존중할 수 있지만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다. 내 취향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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