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사들은 담임을 맡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느 학교에서는 2월만 되면 갑자기 교사들이 교장실 앞에 진단서 들고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단다. 담임을 맡지 않으려는 교사들의 몸부림. 십분 이해가 된다. 담임과 비담임은 그 업무의 양과 책임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살벌하게 비담임 쟁탈전이 벌어지다 보니 여기에서도 권력의 역학 관계가 적용되어 어느 학교에서는 기간제 교사들에게 담임을 맡기기도 하고,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경력과 나이로 아래에서부터 담임이 채워진다. 가끔 교사들끼리 '부도덕한' 농담을 하기도 한다. "저 인간 완전 꼴통이야. 어떤 일도 맡기면 안 돼."라는 평가를 받는 순간 '업무로부터 해방되는 신세계'가 열린다며 자신의 캐릭터를 바꿔야겠다고...
오늘 하루 담임으로서 한 일- 비담임이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떠올려 보니 다음과 같다. 출근하자마자 교실에 들어가서 자율학습 지도, 지각생 체크, 학년 회의 참석, 출석부 확인, 학급 조회, 지각생 학부모에게 지각 사실 고지, 기말고사 성적표 통신란 기재, 프린트, 날인 후 제출, 추천심의위원회에 올릴 학생 선정 및 서류 작성, 생활기록부의 자율활동, 진로활동, 동아리 활동 상황 기재, 급식비와 등록금 미납자 명단 확인 후 학부모에게 문자 알림, 어제 자율학습 참여 현황 확인 후 불참자 체크, 사정회 준비를 위한 사정원표 작성 제출, 체험활동 다녀온 학생의 체험활동확인서 수합 제출, 종례, 청소 지도, 자율학습 불참자 면담, 담임 회의 참석. 학생의 자기소개서 첨삭 지도. 어제 불미스런 사건(?) 관련 학생 세 명과 면담 등. 틈틈이(?) 4시간의 수업을 하면서 오늘 한 일들이다. 물론 오늘은 바쁜 날에 속한다. 하지만 비교적 한가한 날에도 학교에서 책을 읽을 시간은 자율학습 지도하는 시간 정도일 뿐 거의 없다. 상황이 이럴진데 누가 담임을 하겠는가? 비담임은 교과 수업만 즐겁게(?) 하면 끝! 책임질 일도 없고, 신경 쓸 일도 학생들과 감정 싸움 할 일도 없는데다가 만일 고3 수업만 들어가면 수능날부터는 수업도 없다.
월 10 여 만원 정도의 담임 수당은 담임 유인책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담임 기피 현상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담임 기피 현상은 학교 현장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 있고, 학생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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