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속물? 그냥 진화가 덜 된 거라고 생각하자.

사회선생 2013. 8. 19. 18:52

 

 개학 첫 날, 날씨는 덥고, 공부는 하기 싫고, 어떻게 하면 나를 유도하여 ‘공부’가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를 끌어 낼까 학생들이 애쓴다. 비교적 학생들의 ‘의미 있는’ 질문에는 진지하고 재미있게 반응을 해 주는 편이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이용하고 싶은 거다. 내가 ‘완성도 높은’ 질문은 덥썩 문다는 것을 학생들도 잘 안다.

 최근 연예인들의 결혼 행태에 분개하며, 한 녀석이 묻는다. “선생님, 남자들은 왜 어리고 예쁜 여자만 좋아할까요?” 공부하기 싫은 속내를 알지만, 그냥 덥썩 물어주기로 했다. 날씨도 더운데, 그래 우리 사회 생물학적으로 풀어 보자고 생각하면서......

 “글쎄, 너희들이 능력 있고 잘 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원리 아닐까?”

학생들이 조금 억울해한다. “남자들이 어리고 예쁜 여자를 선택하는 것은 속물처럼 느껴지고 불쾌하니? 본능이지 뭐. 그냥 아직 진화가 덜 됐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학생들이 웃는다. 그리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너희들이 만일 원시 사회에서 살았다면 어떤 남자를 배우자로 선택했을까?”

 “사냥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요.”

 “그래, 아마도 임신과 출산, 양육 기간 동안 자기를 먹여 살려 줄 남자를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냥 능력이 뛰어난 남자를 찾았겠지. 동물의 세계에서도 힘 센 수컷은 암컷을 많이 차지하지만 그렇지 않은 수컷은 암컷을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 암컷들의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지. 현대 사회에서의 안전 장치는 자본이 되다보니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경제력이 있는 남자를 선호하는 거 아닐까? 같은 원리야. 남자 역시 본능적으로 더 많은 자신의 후손을 남기고 싶어하는 수컷으로서의 유전자가 남아 있는 거 같아. 그들의 유전자에는 각인되어 있겠지. 젊은 여자일수록 더 많은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데다가 예쁘기까지 하면 더 좋은 유전자를 자신의 후손으로 남길 수 있다고. 이와 같은 행태는 인간이라는 동물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라고 난 생각해. 그러니까 너무 속물이라고 욕하지 마. 인간도 동물의 속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얘기하면 인간의 행동이 결국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으로 끝날까봐, 그리고 이와 같이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를 정당화할까봐 걱정스러워 한 마디 덧붙인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이 발달하며 최근에는 결혼을 인격적인 결합으로 보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는 본능보다 자신과의 가치관, 성격, 애정, 사회적 지위 등 다양한 기준을 생각해보고 결혼 대상자를 선택하게 되었지. 이제 안전을 위협받는 시대도 아니고,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니까. 그러니까 젊고 예쁜 여자만 밝히는 남자나 돈만 밝히는 여자는 그냥 아직 진화가 덜 되었구나 생각하렴. 그리고 너희는 이성적, 인격적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렴”

 이쯤에서 대충 정리하고 수업 진도를 빼려는데, 한 녀석이 살짝 초점에서 빗나간 말을 하며 가로 막는다.

 “가장 아름다운 결혼은 사랑으로 하는 거잖아요.”

 “음... 대중문화가 사랑으로 먹고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랑 지상주의에 빠져있긴 한데...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결혼과 애정이 결합되기 시작한 건 유럽에서는 낭만주의 시대 이후?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너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애정 없이 결혼했잖아. 백 년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은데... 결혼은 다양한 사회적 가치관이 결합된 산물이야. 그 시대에 무엇을 중시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지금은 애정을 중시하지만, 그 애정도 따지고 보면 여러 가지 다른 조건들과 결합된 거 아닐까? 예를 들어 너희가 대학을 나와 직장 생활을 하다가 어떤 남자에게 필이 팍 꽂혔어. 그래서 사귀고픈 마음에 알아보니 남자는 중졸이야. 과연 너희가 애정만 가지고 결혼을 할까? ”

 아, 결국 또 여학생들의 환상을 깨고 말았다. 그런데 어쩌랴? 어릴 때부터 읽은 공주 동화와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드라마만이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을. 결혼에 대한 환상을 깨서 미안하긴 한데... 다 너희들을 위해서야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이해할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며 교과 수업을 시작한다. “이젠 너희도 능력이 있어야 원하는 삶도, 남자도 선택할 수 있어. 우리의 능력이 뭘까? 우린 소녀시대나 전지현 유전자가 아니잖아. 공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