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동물권 단체의 한 직원에게 우리 학교가 길고양이의 통로를 폐쇄하고 밥을 못 주게 하고 있다며 알고 있냐고 내게 물어왔다.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할 예정이라니 아마 동물권 단체와 길고양이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많이 알고 있는 이야기인 듯 했다. 그런데 난 왜 몰랐지?
출근하자마자 자초지종을 알고 싶어서 교감님께 쪽지를 보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학교에서 한 것이 아니고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중학교에서 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미 어디선가 항의 민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 대한 답변서까지 냈고... 하지만 그걸로 단순하게 끝날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길고양이 몇 마리에게조차 곁을 주지 않는 우리네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매우 씁쓸했다. 답변서는 보지 않았지만 보나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정당화했을거다. 내면에는 교내에서는 고양이 따위를 보고 싶지 않다는 누군가의 고양이 혐오감이 자리잡고 있을거고.
리더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학교의 대응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길고양이와 공존을 하며 좋은 생명윤리교육의 사례로 활용하고 있는 학교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생명윤리 감수성을 높이는 데에 얼마나 좋은 교육 소재인가? 실제로 이런 문제를 해결한 성공 사례들도 많이 있다. 작년에 수업 중 학생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고양이들이 새끼를 낳자 수시와 정시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밥도 주고, 이뻐라 했다. 물론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학생도 있었을거다. 그런데 무섭다고 치워주는것이 교육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학교의 대응 방식은 문제이다.
첫째, 학교는 사유지가 아니다. 고양이의 통로가 되는 것을 막을 권리가 없다. 고양이의 밥을 놓는 것을 막을 권리가 없다. 그 넓은 운동장에 정말 찾기도 힘들 만큼 누군가 한 귀퉁이에 밥을 놓고, 고양이 역시 사람들이 적게 다니는 시간에 학교 운동장을 누빈다고 해서 - 구석으로만 다닌다 - 문제될 게 없다. 무서워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단지 무서워하는 이유만으로 그 존재를 치워야 하는가?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둘째, 고양이는 학생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동물이 아니다.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실내에 들어온 고양이 조차도 문 열어두면 알아서 나간다. 우리가 그들을 싫어하는 것보다 그들이 우리를 싫어하는 감정이 훨씬 더 클 거다. 그냥 두면 된다. 그냥 두면 학교가 고양이 천지가 된다고? 그런 걱정은 무지에서 나온거다. 길고양이의 개체수는 솔직히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알아서 조절된다. 도심 한 복판에서의 길고양이는 교통사고나 잘못된 음식으로 3살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셋째, 학교는 생명윤리교육의 장 그 자체이다. 교실 수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그리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생명윤리의식을 보여주고 실천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펜스를 치고, 학생들에게 밥을 못 주게 하는 행위는 고양이를 좋하는 학생이든 싫어하는 학생이든 둘 다에게 비교육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공존과 상생을 할 수 있을까 모색해야 한다. 학교라면 적어도 학생들에게 그런 가치를 갖도록 교육하는 곳이어야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건 고양이도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냥 두면 된다. 보살피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남이 주는 밥도 빼앗고, 길까지 빼앗는건 인간이 할 짓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학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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