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반려견 해리는 행운아이다. 푸들아빠와 래브라도(이지만 백구의 피도 조금 보이는)엄마 사이에서 태어났고 - 소형견 수컷과 대형견 암컷 사이에서 태어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단다. - 유기견 출신이지만 그래도 인간 가족 만나서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머리가 참 좋다. 어릴 때부터 손잡이 내려가며 문 열어서 방에 드나들고, 자기 장난감을 잘 찾아오고, 원반 던져주면 신나서 공중 점프하며 받아 내고, 바구니 물고 다니게 하면 신나서 잘 물고 다니는게 재밌고 신기했다. 기본적으로 좋은 학습 머리를 타고 났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고나 할까, 눈치도 빨라서 분위기 파악도 매우 잘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 토리는... 정서적 지능은 좀 높은데 공부 머리는 영 별로이다.
해리의 특별한 지능을 설명할 수 있는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리드줄이 나무에 둘둘 감겨 있으면 자기가 이리저리 혼자서 풀고 나온다. 긴 줄을 하고 숲을 다니다 보면 이리 저리 나무에 휘감기는데, "해리야 돌아서 나와" 그러면 지가 이리 저리 움직여보다가 풀더니 요즘은 한번에 바로 풀어서 나온다. 토리는 줄이 감기면 나보고 움직이라고 자기는 서서 꼼짝을 안 하는데 해리는 어떻게든 자기가 풀어보려고 애를 쓰고, 결국 풀어서 나온다. 동네 산에서 산책하다가 장갑을 잃어버렸을 때, 그냥 미친척하고 해리에게 '해리야, 장갑이 없어졌어. 찾아 와.' 하고 줄을 풀어 줬더니 되돌아 뛰어가서 한참 만에 장갑을 물고 내려왔다
지능은 인내심과 상통하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닭고기 덩어리를 입에 물려주며 이거 먹지 말고 아빠 갖다줘 그럼 그걸 물고 아빠 앞에 내려 놓는다. 물론 가는 길에 살짝 고뇌를 한다. '갖다 줘야 돼요? 내가 그냥 먹으면 안 돼요?'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고뇌만 할 뿐 절대 튀지 않는다. 아무리 상 위에 자기가 좋아하는게 있어도 먹으라고 하지 않으면 구경만 한다. 그런걸 특별히 가르친 적도 없건만 참 신기하다.
산책갈까 말하면 자기 목줄을 물고 와서 채워 달라고 기다리고, 나나 아빠가 양말을 안 신고 있으면 - 나가야 하는데 - 양말을 찾아서 물고 나온다. 산책 가기 전에 해리야 양말 좀 갖고 와 그런 말을 몇 번 했다고 이젠 운동 나갈 때 양말 신고 나가라고 갖다 준다.
비어 있는 밥그릇을 톡톡 치길래 배가 고파서 그런가 하고 밥을 쏟아 줬더니 토리가 먹는다. 토리가 배 고파한다고 밥 달라고 한 거였다. 해리가 밥 달래서 밥을 줬지만 해리는 사료를 안 알갱이도 안 먹는 모습을 봤다.
방에서 자고 있는 아빠를 깨우라든지, 데리고 오라고 하면 서서 앞발로 문고리를 딱 내려서 문을 밀고 들어가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운다. 데리고 오라고 하면 자꾸 눈짓을 하며 가자는 방향을 튼다. 화장실 가고 싶으면 테라스로 나가는데 그 때에도 나에게 와서 앞발로 나를 툭툭 치며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며 테라스 쪽으로 이끈다. 문을 열어 달라는 표시이다.
해리는 원반이나 공을 던져주면 기가 막히게 받아온다. 따로 훈련이라기보다 집에서 인형 던져달라고 해서 던져주면 받기 놀이 좀 하더니 산의 남의 묘지 넓은 풀밭에서 프리스비 한 번 했더니 거의 날아다닌다. 그러다가 허들처럼 막대기라도 높이 들고 뛰라고 하면 또 신나게 점프한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도 원반이나 공을 바닥에 놓고 이제 집에 가자고 하면 딱 두고 따라 나선다. 물고 가자면 물고 간다. 도무지 개같지를 않아서 놀랄 때가 많다.
개들 아이큐 검사하는 방법 몇 가지가 있는데 담요로 덮어 놓고 몇 초 만에 빠져 나오나 살펴보기, 앞발을 이용해서 컵을 쓰러뜨려 먹을 거 찾아 먹기, 널판지 아래에 먹이를 두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밀어야만 먹을 수 있게 해 두고 관찰해 보기 같은 걸 해 보면 지능 검사가 무색할 정도로 잘 한다. 모르긴해도 개 장애물 경기나 원반 던지기같은 걸 죽자고 연습해서 나가면 웬만한 대회에서 상을 받고도 남을 만한 잠재력이 있는 녀석이다.
하지만 그냥 잠재력만 가지고 우리와 이렇게 사는게 나는 훨씬 더 해리가 행복한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가끔 해리에게 말한다. "네가 진짜 전문가 만나서 공부 제대로 했으면 너 지금보다 불행해. 맨날 운동장에서 지치도록 연습하고, 대회 나가서 상 받아야 한다고 스트레스 받고, 사람들이 자꾸 주목하고 낯선 사람들이 막 만지려고 하고, 새끼 낳자고 하고, 새끼 낳으면 이별해야 하고... 너 그거 정말 불행한거야. 머리 좋다고 경찰견이나 군견이나 어디 지킴이라도 돼 봐. 그거 넌 월급도 못 받으면서 빡세게 일만 해야 돼. 얼마나 고달픈데... 그냥 지금처럼 적당히 놀고, 실컷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이렇게 널부러져서 사는게 훨씬 행복한거야." 그걸 해리가 알려나?
인간도 사실 그렇다. 지나치게 재주가 많아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에서 주목받고 휘둘리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힘들다. "야, 너무 공부 잘 해도 인생 피곤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만큼만 적당히 해."라고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다. 인간은 의지가 있으며 노력의 댓가를 온전히 자신이 획득하고 향유할 수 있으며, 또 세상은 그런 인간들에 의해 더 나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은 우리 해리에게만 하는 걸로!
'반려동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나 사람이나 키우기 나름이다 (0) | 2020.06.24 |
---|---|
개는 읽으라고 펼쳐 놓은 책과 같다 (0) | 2020.05.22 |
보고 싶지, 식군데... (0) | 2020.03.01 |
몰랐을까, 모르고 싶은걸까. (0) | 2019.12.19 |
유기견 구조작전 성공! (0) | 2019.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