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수가 80명 가까이 되는 학교에 근무한다. 그런데 주말 아침, 정보부장이 학교 교사 전체 단톡을 만들어 링크를 걸어 놓고 여론 조사에 응해 달란다. 교육부에서 급히 하달된 것이란다. 요즘 상황이 비정상적인 때인지라 뭔가 급한 사인인가보다 - 평소같으면 주말에 업무 단톡까지 한다며 투덜거렸겠지만 - 하고 들어가보니 4월 6일 개학에 대한 여론 조사이다.
어이가 없었다. 교육부의 무능함과 비겁함을 느끼게 해 주는 여론조사였다. 일단 내용이 조악하기 이를데 없었다. 예를 들면 개학일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뭐냐는 질문에서 학생의 안전이라고 답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답변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설문이었다. 나이나 지역에 따른 변수가 별로 무의미한... 그런데 이런 여론 조사를 하는 이유가 뭘까? 개학일을 여론 조사로 결정할 일인가?
개학일은 여론 조사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의학전문가와 방역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교육부에서 결정해 주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 조사로 이를 결정하고자 한다면 이는 무능한거다. 학교에서 감염자가 발생하거나 확산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대처 가능한지 등에 대해 교사들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학생이나 학부모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학생과 그들의 가족과 사회 구성원들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이 정해져 있는 여론 조사를 하는 의도가 별로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가 늘 그렇듯이 국민의견 존중한다며 민주주의 코스프레하면서 직무유기와 책임회피를 하려는 비겁한 행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무능한데다 비겁하기까지 하다. 개학을 미루면 학사 일정상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 같고, 그렇다고 개학을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자신들이 결정해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거다. 교사들이 원하지 않아서, 학부모들이 원하지 않아서, 학생들이 원하지 않아서 개학을 미뤘으니 학사 일정으로 인해 받는 불이익은 너희들이 지라고 할 판인가 보다.
P.S. 사재기도 없고, 마스크도 열심히 쓰고 다니고, 우울증 걸리기 일보 직전이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 열심히 실천하며 사는 대다수 국민들의 수준에 비하면 교육부 수준은... (이하 생략) 다들 코로나로 예민해지고 점점 먹고 살기 힘들어지다보니 많지도 않은 월급 그래도 따박따박 받는 교사집단이 요즘 동네북이다. 피해의식인지 모르겠지만 교사는 개학에 찬성해도 욕 먹고, 반대해도 욕 먹는다. 찬성하면 학생들의 안전은 뒷전이라고 욕 먹고, 반대하면 놀면서 월급 받아먹으려 한다고 욕 먹는다. 그런 여론 조사 할 시간 있으면 온라인 강의할 인프라가 갖춰졌는지 살피고 아니면 대체할 방안이라도 만들어서 제공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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