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그런 적이 없었다. 학생 회장 선거에서 단독 후보가 나왔다. (입시 제도에서 정시 비중이 높아져서 벌써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어쨌든) 이럴 경우 찬반 투표로 진행되고, 대부분 - 다시 투표하기 귀찮아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으면 네가 해라하는 마음으로 - 찬성 투표가 많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학생들이 단독 후보라도 너는 싫다고 투표로 보여줬다. 그 적극성에 깜짝 놀랐다. 어른들의 정치 행태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일이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궁금해서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후보자들이 별로란다. 아마스빈(버블티 카페다)에서 새치기 하는 걸 목격했고, 말을 싸가지 없이 하고, 공약도 별로라며 구구절절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한다. 이제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 표현을 확실하게 한다. 학생회장이 없으면 없었지 네가 되는건 싫다고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한 셈이다. 어른들보다 낫다.
학교에서 새로운 학급 편성을 하면서 현재 담임들에게 같은 반이 되면 안 될 아이들을 조사해서 알려 달라고 했다. 서로 나쁜 시너지를 낼 학생들을 좀 흩어 놓고, 집단 따돌림 같은 경험이 있었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조회 시간에 들어가서 '혹시 나중에 같은 반이 되면 많이 힘들어질거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게 문자로 조용히 알려줘. 사유까지 문자로 보내줬으면 좋겠어.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 볼게. 하지만 안 될 수도 있어.'
우리 반의 세 명이 다른 반의 세 명을 지명하며 같은 반이 되기 싫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냥 자기랑 안 맞고 불편해서 싫단다. 그런데 어떤 반은 한 명이 여섯 명을 써 내기도 하고, 반마다 서 너 명씩은 요구 사항이 있나보다. 주도권을 내가 쥐어야 하는데 그걸 방해하는 애, 예전에 친했는데 싸운 후 껄끄러워진 애, 오래 전 나를 놀렸던 애,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던 애, 집단 따돌림을 주도했던 애, 그냥 시끄러워서 보기만 해도 싫은 애.... 내가 가만히 살펴 보니 아이들 만큼이나 피하고 싶은 이유도 다양하다.
"얘들아 너희가 사회 생활 하다 보면 별별 사람 다 만나. 별로인 사람들을 만나 적당히 지내는 것도 국영수 잘 하는 것 만큼 힘든 기술이야. 폭행과 같은 범죄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수용하고 같이 지내야 하지 않을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 할 수 없었다. 어설프게 교육하다가 인권 침해하는 꼰대 교사 되기 십상인지라... 학생 개인의 감정, 개인의 취향, 개인의 선호에 따라 반 편성을 하고, 학급 담임도 편성해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 (그런데 사실 나도 시끄럽고 거친 사람을 싫어하는지라 그런 사람이 학교에 안 나오면 좋긴 좋다. 뭐 애들 말 할 것도 아니네...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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