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기생충, 내 맘대로 상상

사회선생 2019. 6. 1. 22:00

봉준호의 영화를 보면 그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온갖 상상을 하며 자란 오타쿠였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기생충을 보면서도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그는 머리가 좋아서 오타쿠 기질을 창의적인 작품으로만 그릴 뿐 실제로는 사회성도 훌륭한 매우 괜찮은 인간으로 보인다. (굳이 다행이라고까지 하는 이유는 예술한답시고 자신의 일탈 행동까지도 예술의 범주에서 해석해 주기를 바라는 이상한 인간들이 많기 때문이다.)  

제목이 왜 기생충일까? 실제 기생충이 나올 리는 없고 분명히 상징적인 제목일텐데 무엇일까? 영화를 보기 전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봉준호의 의도였으리라. 기생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인간 군상들이 종국에는 서로를 파국으로 몰아 넣었기 때문에 '충'까지 붙여야 했다는 것을 영화가 끝나고 알았다. 코믹으로 시작해서 호러물로 끝나는 것같은 이 독특하고 기발한 장르도 매력적이었고, 극단적 빈부의 격차를 정치성도 없고, 선악구도도 없이 개인의 심리, 혹은 계층의 문화만으로 그려 낸 것도 참 신선했다. 봉준호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를 염두에 두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대비시켰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학과 출신이라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기생충을 보는 내내 봉준호의 상상과 나의 상상을 계속 중첩시키며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묘미가 있었다.

서로 의존하며 살지만 결코 섞일 수는 없는 -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들은 상대방이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고 서로를 파국으로 몰아 넣는다. 예측하기 힘든 스토리의 전개로 끝까지 몰입하게 했고, '인디언'이나 '수석'이나 '모르스 부호'같은 것의 상징성을 생각해 보게 했으며, 연기자들의 힘이 완성도를 높였다.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점층법적인 사건 전개를 보며 연극으로 만들어도 꽤 괜찮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배우 중 한 명을 고르라면 조여정의 재발견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여정은 - 기대하지 못했는데 - 연기가 아니라 그녀의 일상 같았다. 어쩜 이미지와 그렇게 딱 맞는 역할을 만났을까. 그녀를 처음부터 선택했다는 감독의 눈은 그 자체로 감독의 힘이었다. 봉준호는 분명 우리 영화의 격을 한 단계씩 끌어 올리고 있다. (아, 오래 전, 살인의 추억 즈음..., 연대 후문 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봉준호를 본 적이 있었는데, 싸인이라도 받아둘걸.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