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교사를 선택한 이유, 옳지 않았나보다.

사회선생 2019. 4. 25. 09:55

수 많은 직종 중에서 교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공부를 계속하며 나를 계발하는 것이 학생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고, 비교적 업무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는 직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기업에 가면 월급은 더 받았겠지만 인간인 내가 소모품이 될 거 같았고, 층층시하 권위적인 조직도 숨막힐 거 같았다. 물론 자율성과 독립성을 생각했다면 교수를 하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은 몇 가지 때문에 포기했다. 첫째는 학위를 받는다고 해도 바로 교수가 된다는 보장이 없고, 둘째는 학위를 받는 과정 속에서 지도 교수의 온갖 수발을 다 들어야 하는 당시의 문화가 싫었고, 셋째는 공부 과정이 길어서 경제적으로 빨리 독립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교사를 선택해서 지금까지 왔다. 막상 시작해보니 학교도 만만치 않은 조직이었고 - 가끔 생각한다. 학교가 이 정도면 기업은 오죽할까 - 여전히 조직 생활은 참 힘들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생각하고 따지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그냥 말하는 '지혜롭지 못한' 성격이라 윗 사람들의 미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타고 난 성격이 변하지 않나보다. 지금이야 나이라도 좀 들었지, 옛날에 그들이 보기에는 어린 것이 참 맹랑하고 가관이었겠다 싶다. 예를 들면 교사 정년 연장 연판장을 돌리는데 나만 싸인을 안 해서 교감님께 불려갔는데 싸인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든지, 우리반 학생만 부정행위로 징계를 받게 돼 징계위원회가 열렸는데 어차피 담임 괘씸죄로 학생 징계하는 것 아니냐며 마음대로 하라고 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다든지, 딸같이 생각한다며 막 대하는 교감선생님에게 애정은 없으면서 막 대하기 위해 딸 운운하지 마시고 그냥 직원이라 생각하고 거리를 두고 대해달라고까지 했으니 ... 미움받아 이리 저리 치이고, 늘 일은 제일 많이 하고 욕도 제일 많이 먹고 인사상 불이익도 받고, 아무튼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나쁜 것만 받으면서 그렇게 살았다.  

그래도 짤리지 않고 혹은 그만 두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교실 수업때문이었다.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은 재밌었다. 학생들과는 잘 지냈는데, 그것도 어쩌면 전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학생들 앞에 '권위'를 세우는 길은 '실력'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지적 자극을 받고 싶어서 EBS 방송도 했고- 학교는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 연구 차원에서 책도 많이 썼고, 그러면서 공부가 돼 또 학생들에게는 더 나은 수업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선생님은 잘 가르쳐. 수업 시간이 좋아. 수업 시간이 재밌어.' 이런 반응이 나와줘야 내 존재 가치나 의미가 있을 뿐더러 그거라도 못하면 나같은 사람은 조직에서 짤라내기 딱 좋지 않겠는가?  30대, 40대를 그렇게 보냈다. 한창 방송을 할 때에는 학원의 유혹도 있었지만, 돈보다 자유였기 때문에 학교에서 핍박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학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되돌아보니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회의가 든다. 입시 제도때문에 수업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학생도 많아지는 데다가 여전히 학교는 보수적이고, 조직을 중시하며, 개별 교실의 상황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보다는 행정업무 잘 하는 사람을 우대하고, 복종하는 사람을 좋아하며, 그들을 위한 학교가 된다. 교사들에게 책임은 더 많아졌고, 권한은 더 적어졌으며, 그 작은 학교에서도 권력이랍시고 누군가가 편해지기 위해 누군가에게는 더 많은 짐을 씌운다. 그렇게 돼 버렸다. 기업은 관료제에서 벗어나고 있는데, 오히려 학교는 관료제적 특성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역주행을 하고 있다.    

어느 신문 기사에서는 노골적으로 교사들이 경쟁력이 없어서 큰일이라고 한다. 단언컨대, 나의 20대 30대 시절에는 교사하고 싶은데 교사가 되지 못해서 학원 강사 하는 사람은 있어도 교사하기 싫어서 일부러 학원 강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왜 그럴까? 철밥통이 보장돼 있기 때문이 아니다. 50미터 풀장에서 쓰레기 줍기만 시키면서 바다 수영 잘 하는 애들만큼 수영 못 한다고 난리 치는 꼴이다. 지금 우리네 학교가 가는 방향이 옳은가. 아무리 봐도 학교가 별로 좋아질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학교가 별로 좋아지지 않는 한, 교사도 학생도 좋아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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