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서울대 입학의 가장 큰 변수는 뭘까?

사회선생 2019. 1. 4. 21:43

몇 년 전, 가까운 선배가 자신의 아이 때문에 하나고 입학 설명회에 다녀와서 한 마디 했다. "하나고 교장선생님이 하나고는 전교생이 오케스트라를 할 수 있을 정도로 1인 1악기 교육을 하고 있다고 자랑하더라구. 개인 레슨 받아서 일정 수준의 연주를 할 수 있는 학생들만 뽑으면서 마치 자신들이 악기  교육 시켜서 오케스트라 만드는 것처럼 이야기 해. 하나고 갈 정도 애들이면 대부분 집에서 유치원 때부터 악기 레슨은 기본이고, 전천후로 관리 받아온 애들이야. 아닌 애들이 몇이나 되겠니?" 

얼마 전 체험학습때문에 학생들을 이끌고 서울역사박물관에 간 적이 있다. 우리 반 학생들을 들여 보낸 후 1층 로비 의자에 앉아있는데, 옆에서 학생 몇명이 앉아 면접 준비를 하고 있다. 귀 쫑긋 세우고 들으니 고3 중에서도 아주 뛰어난 학생 수준의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간다. 자신들끼리 질문하고 답하고 서로 코멘트 해 주는데, 이건 웬만한 교사보다 낫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대학 입학 면접은 다 끝난 시점이다. 게다가 학생들을 자세히 보니 어려 보인다. 이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에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내가 물어봤다. "어느 학교에서 왔니?" "반포중학교요." "그런데 어디 면접 준비를 하는거니?" "저희 하나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잘 될 지 모르겠어요." "참 잘 하던데... 잘 될 거야."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낯선 아줌마의 질문에도 공손하게 답변하고 예의바르게 인사까지 하고 가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하나고 교사들이 부러웠다. 저런 수준 이상의 학생들만 입학할 거 아닌가?

지인이 신문 기사 하나를 보내왔다. 그 기사의 내용인즉, 하나고가 수시 맞춤 교육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을 서울대에 입학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고에게는 하나고를 본받으라는 거고, 학부모들에게 고등학교 좋은 곳에 보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보다. 

그런데 정말 하나고 프로그램이 서울대 입학의 가장 큰 변수인지 아닌지 알려면 중학교 졸업 성적이 3% 이내이면서 스펙도 훌륭하고, 게다가 면접도 잘 하는 학생들을 모집단으로 해서 그들이 어느 대학에 갔는지 조사해 보아야 할 거 같다. 장담하는데, 그런 수준의 학생이라면 어느 학교에 가도 서울대에 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정말 더 엄밀히 말하면 그런 수준의 학생들을 받아 놓고 1/4밖에 서울대에 못 보냈다면 이건 오히려 실패로 봐야 한다. 그런데 기사를 보면 원인 무시하고 결과만 놓고 거기에 끼워 맞춰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가정 변수가 교묘하게 하나고 변수로 둔갑한, 하나고 광고 기사였다. 전천후로 뛰어난, 서울대에 갈 인재들만 받아 놓고,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인양 보도된 내용을 보고 있자니 좀 불편했다. 인과관계의 오류라고나 할까. 

하나고를 제외하면 서울대 수시 입학생을 많이 낸 학교들은 전국의 과학고들이다. 예를 들면 경기과고는 수능 준비같은 것도, 수시 프로그램같은 것도 따로 준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하나고보다 서울대에 더 많이 보낸다. 경기과고는 120명 중 48명 보냈는데, 하나고는 200명 중 46명 보냈다. 경기과고는 절대적 수에서도 우위지만 기타 과학고는 수시 프로그램이 따로 운영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율로만 보면 하나고보다 낫다. 정말 수시 프로그램이 서울대 입학의 변수였을까?  특목고의 프로그램 때문에 서울대에 갔다는 기사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 끝만 보면서 쓴 기사이다. 정말 서울대 입학의 가장 큰 변수는 뭘까? 다 알고 있지만, 차마 불편해서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건 아닌지...   


p.s. 조금 다른 이야기 하나 더. 서울대가 지역균형전형에서는 최저를 걸어두었으면서 일반전형에서는 최저를 두지 않은 이유가 뭘까? 특목고 학생들(특히 과학고)을 우선 선발하고 싶어서였을게다. 아래의 서울대 수시 입학생의 수를 보면 일반고는 거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짐작컨대 일반고는 - 지역별 차이가 있지만 -  수시에서 지균2, 일반1명 정도 합격자를 내면 선방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세명의 학생들은 대부분 특목고 떨어져서 일반고에 온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 창조자(?)가 학교인지 학부모인지는 여전히 어느 하나로 단언하기 힘들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262127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bss7202&logNo=221426727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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