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대학 안 가고 네일아트 할래요

사회선생 2018. 12. 28. 11:10

나도 편견에 가득찬 사람인가보다. 충분히 대학에 갈 수 있는 학생인데, 대학에 안 가고 네일아트를 하겠다고 하니 말리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네일아트의 길은 저임금으로 미용실 같은 곳에 취업을 하거나 영세한 자영업에서 벗어나기 힘든, 둘 다 별로 평탄한 길이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1년 동안 내가 본 학생의 성격을 보면 그리 사교적이지도 않고, 생활력이 강해보이지도 않고, 자신이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개척하며 나갈 성향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워낙 참하고 성실해서 주어진 일은 잘 할 것 같이 보였다.  

그런 학생이 수능에서 수학을 1등급, 백분위 98%를 받았다. 나머지 점수는 5~7등급이라 쓸만하지 않지만, 그래도 잘 하면 수학을 살려서 갈 수 있는 대학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면담에도 안 오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억지로 학생을 불러서 면담을 했다. 지방 간호대를 찾아보니 수학을 60% 반영해 주는 곳이 있어서 지방 간호대라도 넣어보고, 안 되면 지방간호전문대라도 가자고 네 점수면 그런 곳을 갈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그런데 실패했다. 그런데 얘가 싫단다. 수학을 잘 한 건 그냥 자기가 원래 수학을 좋아해서 수학 공부만 했기 때문에 좀 잘 한 거고, 원래 자기는 대학에 갈 생각이 없단다. 네일아트 배워서 바로 취업하겠다는거다. 혹시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되는건 아닌지, 부모님과는 모두 상의된 일인지 이리 저리 돌려서 물어보니 그렇진 않단다. 그냥 자기는 더 이상 공부가 하기 싫단다. 간호대에 가면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하는데, 견딜 자신이 없다며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학생의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어머니도 나와 생각이 같지만 아이의 뜻이 확고해 어쩔 수가 없다며 그냥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살아야죠 저희가 어쩔 수 없을 것 같단다.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자기가 죽어도 하고 싶다는데, 그 길로 가다가 아니면 돌아오면 되고, 아니면 다른 길 찾으면 되지, 굳이 애써 본인의 적성에 맞지도 않는다는데 간호대를 들이밀던 나나 그래도 대학에 가야 한다고 했던 부모의 조언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리라.

뭔가 마무리를 해 줘야 할 것 같아 학생을 다시 불렀다. 네일아트를 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단다. 그런 일을 하면서 평생 살면 좋을 것 같단다. "난 네일아트의 세계를 몰라. 너에게 어떤 조언도 해 주기 어렵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가 보고 싶은 길이라면 가 봐야지. 그런데 그 길이 아니라고 생각될 때에는 또 다른 길들이 많이 있으니 너무 절망하지 말고 또 다른 길을 찾으렴. 네가 수학을 잘 했던 것으로 봤을 때에 넌 공부 머리가 좋은 편이니 작정하고 공부하면 잘 할 수 있을거야. 어떤 공부라도."  내가 해 줄 수 있었던 마지막 조언이었다. 내가 아는 길만 가라고 밀고 있는건 아닌지... 기성세대와 교사의 한계이다.

'교무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잉 서비스를 강요하는 사회  (0) 2019.04.16
서울대 입학의 가장 큰 변수는 뭘까?  (0) 2019.01.04
J에게   (0) 2018.12.28
지각 좀 봐 주세요  (0) 2018.12.21
수행과 수능과 입시   (0) 2018.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