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책임 돌리기의 끝은

사회선생 2018. 12. 6. 11:34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늘 가장 말단에 있는 사람이 제일 큰 책임을 지고,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이 가장 적은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다. 책임이 큰 만큼 더 높은 지위에서 더 많은 보수를 받건만, 현실에서는 지위가 낮을수록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더 낮은 보수를 받는 것 같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높은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시켰잖아." "내가 말 했잖아."

시킨다고, 말 한다고 다 되면 참 관리자는 편하겠다. 안 되는 일은 안 된다고 인지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되지도 않는 일을 뻔히 알면서 나중에 책임을 전가한다.

며칠 전, 백석역에서 온수관이 파열돼 사망자까지 나오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지역난방공사 사장은 대중에게 머리 조아리며 "관리 잘못해 죄송하다, 앞으로 이런 일 없게 하겠다."고 하면 그만이고, 저 아래의 하청의 하청의 업체 근로자만 파면될, 심지어 형사입건될 가능성이 높다. 사장은 한 마디만 하면 된다. "내가 제대로 관리하라고 했는데 쟤가 안 그랬대요."  (그런데 그 마저도 힘들 것 같다. 사고 브리핑을 하는데 사람까지 죽은 마당에 사장이 분위기 파악 못하고 '미소'를 지으며 미안하다고 하더란다.)  

얼마 전, 고시원 화재 사건 당시 고시원 관리를 맡았던 60대 관리인은 건물주에게 소송을 당했다. "네가 책임진다고 했는데, 책임 못 져서 화재 났잖아. 그 피해 보상 네가 다 해." 계약서를 보니 관리를 맡는다고 돼 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그 60대 관리인이 책임을 질까? 스프링쿨러가 없었던 것이, 비상구 하나 없었던 것이, 창문도 없는 방이 임대된 것이 과연 그 60대 관리 여성의 책임이었을까?

지금 고3 교실을 보면 엉망이다. 수능이 끝나고 학생들은 스스로 학생임을 포기했다. 학교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곳이다. 담임은 그냥 나를 조금 아는 아줌마 아저씨다. 출석부는 엉망이고, 용의복장은 그냥 성인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정상 등교, 정상 수업, 교칙 준수를 시키란다. 사고가 발생하면 분명히 교육부도, 교육청도, 교장도 말할거다.  "난 분명히 정상적인 학사 일정대로 운영하라고 시켰는데, 담임들이 제대로 안 했대요."

정상적인 학사 일정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은 책임을 늘 가장 최전선(?)의 담임들이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온갖 폭탄 다 맞아가며 지키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그 마저도 담임 책임으로 돌아간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도 아는 잘못이건만 서로 절대로 책임은 못 지겠다고 한다. 고칠 생각도 없다. 원칙대로 한단다. 그 놈의 원칙이 누굴 위한 것인가? 작년까지 안 지켰던 원칙을 왜 올해에는 지켜야 하는가? 숙명여고때문에 나에게 파편이 튀어서 문책 당할 수 있으니까? 늘 폭탄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생각은 안 하고 폭탄 돌리기만 하고 있는 우리네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결국 그 폭탄은 또 제일 힘없는 사람이 크게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