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수능 이후 등교, 원칙대로 하라?!

사회선생 2018. 12. 6. 15:55

수능이 끝났다. 지금 대한민국의 고3 교실은 아수라장이다. 학교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 나와봐야 무엇인가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아주 괴로운 상태이다.

1학기 때까지는 눈에 불을 켜고 공부했던 그 학생들이 맞나 싶게 학생들이 달라졌다. 종이 쳐서 교사가 교실에 들어가면 삼삼 오오 앉아 게임하고, 영화보며 '저 아줌마, 아저씨는 누구야?' 하는 낯선 눈빛으로 쳐다보고, 학교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해도 별 관심이 없다. 어차피 교과서는 버린 지 오래됐다

학생들의 심정으로는 왜 학교에 나와야 하는지 모른다. 학교에서 벗어나고 싶다. 마음은 벗어났는데 졸업을 해야 하니 좀비처럼 몸은 억지로 학교에 끌려 와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일부 학생은 몸도 이미 학생 대열에서 이탈하여 금발 머리 휘날리며 피어싱에 문신까지 하고 나타나기도 한다그 동안 공부와 멀리했던 자유로운 영혼들만 그랬다면 새로울 것도 없다. 1학기 때에는 성실함과 열정의 교과서 같았던 아이들도 수능이라는 종착점이 끝나니 늦잠 지각, 스마트폰 놀이로 인한 결석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이제 결석을 해도 교사에게 연락조차 안 한다. ‘생리통이라 못 가요’ 거짓말인줄 알지만 그렇게 문자라도 보내주면 교사들은 감지덕지한다. 적어도 출결을 정리하는 업무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나와도 연락도 안 되고, 왜 안 나오는지도 모르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정말 답이 없다.

이처럼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한다. 수능 이후 고3 교실은 완전히 붕괴되어 학교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학교들은 125일, 수능 성적표를 받는 날까지만 등교를 시키고, 그 이후에는 공식적으로는 등교, 비공식적으로는 선별적으로 등교시켜 정시 관련 개별 면담을 한다. 물론 전교생을 매일 등교시켜서 7교시까지 수업(?)을 하는 학교도 있단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청에서 제시하는 원칙은 똑같았다. 학기가 끝날 때까지 '원칙'대로 정상 등교하여 정상적으로 학사 운영을 하라는... 그런데 올해에는 교육청이 숙명여고 사태 때문에 더 세게 압박을 가하고 있는지 갑자기 교장선생님이 작년까지의 관례를 깨고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선포를 했다. 뭐 엄밀히 말하면 무늬만 원칙이다. 오전만 등교시켜 학교에서 허송세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원칙이 누구를 위한 원칙인지 모르겠다.

학교에 마지못해 나오는 학생들은 학교에 왜 나와야 하냐며 볼멘 소리를 하고, 그런 소리 조차 지겨운 학생은 아예 안 나온다. 담임들은 출결 서류 정리하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화하며 반나절을 보낸다. "학교에는 나와야 되지 않겠니?" "왜요?"

, 그 놈의 원칙. 누구를 위한 원칙인가? 왜 개별 학생과 그 학생들을 맡은 담임 교사들을 원칙 조차 지키지 않는 무능하고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아가는가? 이게 정말 개별 학생과 개별 교사와 개별 교장들에게 물어야 할 책임인가? 정말 원칙대로 가 보자.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려면, 대학 입시가 고등학교의 모든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끝난 이후에 시행되어야 하고, 기말 고사 성적까지 모두 들어간 내신이 입시에 사용되는 내신이 되어야 하며, 선택 과목만 수능 시험을 보게 하여 학교에서 비선택 과목 시간에 이어폰 꽂고 자신이 선택한 과목만 공부하게 해서는 안 된다. 도대체 근본적인 원칙의 문제는 모두 외면한 채, 사고나면 너희 책임이라면서 지키지도 못할걸 뻔히 아는 원칙을 내세우다니... 정말 비겁하고 무능한 교육부와 교육청이다. 그런데 그들이 자꾸 우리보고 무능하다고 되묻는다. 학생들에게 재미있고 의미있고 유용한 프로그램을 짜서 운영해 주면 된단다. 제발 그런 재주 있으면 좀 와서 알려주길.

우리 교장선생님은 올해가 과도기가 될 것이라며 내년부터는 학생들이 학교에 수능 이후에도 잘 나올 것이라는 근거없는 기대를 하고 계신다. 개인의 권익이 더 중요한 학생들이다. 수능이라는 목적이 끝났고, 두 달 정도 결석해도 졸업에 지장없다는 걸 아주 잘 안다. 학교나 교사는 그냥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제공해 주는 서비스 기관일 뿐, 그들에게 더 이상의 의미를 주는 곳이 아니다.

학생들이 정상적으로 등교하여, 정상적으로 공부하고, 정상적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해 달라.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 입시 일정만 뒤로 늦추면 된다. 기말고사까지 끝난 후에 모든 성적이 산정되고, 수능을 보고, 내신과 수능 성적을 완벽하게 비교하여 수시든 정시든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면 된다. 그러면 적어도 지금처럼 학교가 엉망진창이 되지는 않는다. 대학이 힘들어질거라고?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이 이렇게 총체적으로 붕괴되는 것보다는 대학이 조금 힘드는 게 사회적으로 더 나은 선택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