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방탄소년단까지 갔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잘 키운 인간 한 명이 최고의 국가 자산이 될 수 있다며 너희들도 그랬음 좋겠다고 이야기했던 거 같다. 그러자 한 녀석이 말한다. "선생님, 아무래도 전 틀린거 같구요, 나중에 결혼해서 아들 낳으면 세계적인 축구 선수로 키울게요." 학생들이 빵 터졌다. 나도 웃으며 말했다. "그래, 축구 선수. 좋지. 그런데 너는 네 엄마의 꿈대로 크고 있니?"
부모들은 자녀를 통해 대리 만족을 하고 싶어한다. 오래전, 대학 입학 원서를 3학년 담임이 쓰고 결재까지 받아야 제출할 수 있었던 시절에 있었던 어느 선배 교사의 이야기이다. 내심 사위 삼고 싶었던 녀석이 있었단다.그런데 대학 입시때문에 학부모, 학생, 교사가 힘들었단다. 죽어도 의대에 보내야겠다는 부모와 자신은 죽어도 컴퓨터 공학과에 가야겠다고 하는 학생과 그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교사. 결국 그 선배 교사는 부모에게 학교로 나오라고 해서 말했단다. "어머니, 아들, 의대에 보내봐야 결국 며느리만 좋은 일 시키는 겁니다. 그 좁은 진료실에 평생 갇혀 울상 짓고 오는 환자들이나 보면서 살아야 하는데, 어머니 기대대로 의사 라벨 붙이고, 돈 많이 벌면 뭐 합니까? 애가 원하지도 않는데 그 답답한 진료실로 밀어 넣으셔야겠습니까?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게 두세요." 결국 학부모는 그 얘길 듣고 포기했고, 그 학생은 컴퓨터 공학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먹고 살 걱정 때문에 조금이라도 좋은 곳에 보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학교의 실적을 위해 학과 바꿔가며 우격다짐으로 명문대에 밀어넣고, 부모의 자랑을 위해 아이가 원치도 않는 학과로 밀어 넣는 경우도 많다. 더 지능적인 부모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이도 원하도록 어릴 때부터 아주 치밀하게 세뇌(?) 준비시킨다. 그 길 외에는 길이 없는 것처럼... 물론 그렇다고 부모의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뜻대로 되지도 않으면서 학생과 부모는 같이 좌절하고 둘 사이의 관계는 틀어진다.
기성 세대의 경험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절대 그 경험이 전부일 수는 없다. 가 본 길 외에 길은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을 할 뿐 우리가 미리 단정짓고 학생들을 몰아가는 건 더 위험할 수 있다.
나도 예전에는 학생들에게 무엇인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유능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 방탄소년단이 아니면 어떤가? 그게 쉬운 일인가? 그냥 착하고 성실하고 소박하고 정직하게 자기 밥벌이 하면서 동네 아줌마, 아저씨로 사는 삶은 뭐가 어떤가? 그들이 늘 성취에 대한 갈망을 하면서 자신을 힘들게 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기분 좋은, 기분 좋게 해 주는 그런 사람. 드물지만 그런 사람이 가끔 있다. 그래서 말한다. "꼭 방탄소년단이 아니어도 돼. 그냥 방탄소년단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삶도 괜찮아. 의미없는 삶은 없어. 그런데 중요한건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네가 끌고 가는 삶이었으면 좋겠네. 스스로 행복을 찾으면서." 나도 잘 못하면서 학생들에게 요구한다. 나도 대리만족을 꿈꾸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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