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졸업 앨범 사진을 확인하는데, 학년 부장과 3학년 담임 몇몇이 웅성거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봤더니 졸업 앨범 속의 자유 컨셉 사진 중 거슬리는 것이 있다.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겨누고 마치 자살 직전의 모습으로 연출한 사진이이었다. 자살 포즈의 사진이 표현의 방식만 조금씩 다를 뿐 각 반에 한 명 정도씩 있었다. 대부분은 물총으로 웃으면서 자신의 머리에 겨두고 있는 익살스러운 모습인데, 그 중 몇 명은 이게 장난일까, 진심일까, 연기일까 싶을 정도로 표정이나 분위기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걸 그냥 둬도 될지 담임 교사들은 교사다운 이야기를 했다. (아 담임교사의 역할이란!)
한 담임이 사진 주인공 속의 아이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아도 사진을 보고 학생에게 말했단다. 졸업 앨범은 평생 따라다닐 사진인데, 컨셉을 바꾸는게 어떨까. 그런데 단호하게 거절하더란다. 왜 사진도 내 마음대로 못 찍냐면서... 자기는 그 사진이 마음에 든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담임 교사들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걸로 우리끼리 결론 내리고 끝냈다. 하지만 다들 마음이 개운치 않다.
19세 소녀들의 사진에 총구를 머리에 겨누는 모습이라니. 그런데 그걸 못하게 강제할 권한도 없고., 정말 솔직히 말하면 학생과 학부모와 이 사진이 되냐, 안 되냐를 놓고 논쟁을 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학생 학부모와의 논쟁은 소모적일 뿐 결국 교사가 져 줘야 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부모 싸움에서 교사가 이기는 싸움을 본 적이 없다)
학년 부장이 내년부터는 자유컨셉 사진도 가이드 라인을 정해주고 찍어야겠다고 하는데, 공감한다. 총, 칼 안되고, 피 분장 등은 안 되는걸로! 할로윈 데이에 익숙한 세대들이라 저항이 크게 오려나? 한편으로는 자신에게는 심각한 문제 상황인데, 문제 해결 방법을 몰라 자해나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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