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우산이 없으니 빌려 주세요

사회선생 2018. 10. 5. 20:34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데, 한 동료가 카톡 메시지를 보여준다. 한 뼘쯤 되는 길이의 학부모가 보내온 카톡 내용이었다. 형식적인 인삿말과 함께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내용인즉, '비가 오는데 아이에게 우산이 없다. 선생님이 우산을 구해서 아이에게 빌려줘 비 맞지 않고 귀가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교직 생활 20년을 고등학교에서 보낸 사람들이지만 이런 문자는 처음이었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속사정이 있나 싶어서 그 문자를 받은 동료에게 물어봤다. '그 학생에게 지금 특별한 문제가 있어요?" "아니, 정상이야." 우리 반은 아니지만 답문자를 보내주고 싶었다. '학생에게 직접 이야기하시지요. 유치원생도 아니고 18살짜리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라면 그 정도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에게 지나친 요구를 해서도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아이를 키워서 어떻게 할 지 걱정되어서 화가 났다. 신입사원이 일이 힘들다고 징징거리면 그 부모가 상사에게 전화해서 우리 애 힘든 일 시키지 말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런 아이가 나중에 그렇게 되는거 아닌가 싶었다. 그럼 회사의 상사가 뭐라고 답할까? '그렇게 걱정되면 직장 보내지 말고 옆에 끼고 사세요.' 

십중팔구 그렇게 자란 아이는 문제 상황에서 절대 버티지 못하고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평생 캥거루로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주머니에 쏙 들어갈 수 있는 새끼 때에나 캥커루도 귀엽지, 에미보다 더 큰 캥거루가 주머니에 들어가려고 기 쓴다고 생각해봐라. 둘 다 미칠 노릇 아닌가?  

비 맞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은 같다. 하지만 그래도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18살의 건강하고 정상적인 청소년이라면 지나친 부모의 관심이 오히려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 학교가 끝나가는데 비는 오고, 우산은 없고... 그 상황이 되면 학생이 생각할게다. 집이 가까운 친구에게 부탁해서 같이 쓰고 갈까, 편의점에서 하나 사서 쓰고 갈까, 돈이 없는데 그럼 친구에게 빌릴까, 엄마에게 나와 있으라고 하고 택시를 타고 갈까. 그냥 학교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아빠에게 데리러 오라고 할까, 에이 그냥 이 정도 비는 체육복으로 덮어 쓴 채 맞고 갈까... 왜 스스로 해결할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그것을 교사에게 의지하게 만드는가? 바보로 만들고 싶은가? 평생 품고 살거 아니면 제발 강하게 키우길!    


P.S. 가까운 선배와 통화 중 이 이야기를 하니, 그 선배가 말한다. "이제 학생과 학부모는 서비스를 원하는데 교사는 자꾸 예전처럼 교육을 하려고 해. 이 괴리가 점점 커지는거지. 네가 뭔데 교육질이냐고 조만간 소송 들어올거야. 원하는 것만 원하는 대로 해 줘야지 섣불리 교육하면 안 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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