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지각을 하는 학생이다. 빠르면 1교시 중간, 늦으면 2교시 중간에 들어온다. 그런데 어제는 오기 싫었나보다. 2교시 쯤 내게 문자가 왔다. '선생님 생리통이 심해서 못 가겠어요. 생리통 결석으로 처리해 주세요.'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알 도리도 없을 뿐더러, 학생이 자기 권리 찾아 먹겠다는데 막을 도리는 없다.
오늘은 2교시 즈음 학교에 왔다. 그래서 결석계를 내밀며 어제 결석했으니 이 결석계와 함께 부모님의 친필로 생리통으로 못 왔다는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적어도 학부모가 생리통으로 못 보냈다는 인증이라도 받아두려는 생각에서 확인서를 받아오게 한다. 물론 확인서에 대한 안내도 했다. 형식은 없고, A4 용지 한 장에 부모님 중 한 분이 생리통으로 결석하였습니다 쓰고 날짜와 서명을 받아오면 된다고 했다.
오늘 결석계와 확인서를 써서 왔는데, 확인서는 미니 사이즈의 스프링 노트를 부욱 찢어서 그 너덜너덜한 부분이 그대로 있는 상태로 내게 내민다. 정말 이럴 때에 고민하게 된다. 이걸 다시 써 오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슨 공식적 서류도 아니고,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담임 교사에게 제출해야 하는데, 이렇게 써서 보냈나 싶은 마음이 들어, 다시 학생에게 물어봤다. '엄마가 써 주셨니?" "네"
결국 한 마디 했다. "이런 걸 제출할 때에는 이렇게 지저분한 건 정리하고 깔끔하게 해서 내는거야." 그랬더니 의아한 표정이다. 그래서 왜요라는 질문이 나오기 전에 내가 말했다. "공식적인 서류나 마찬가지잖아"
늦으면 늦는다고 학부모나 학생이 미리 문자라도 보내길 바라는거나 확인서 하나 제대로 양식에 맞춰 제출하라는거나, 어른에게 물건을 건넬 때에는 두 손으로 하는 거라고 하는거나... 이런 것들을 이 학생에게 가르치면서... 문득 내가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예의를 가르치는건 맞나? 이제 이건 권위의 산물인가? 예의와 권위 사이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요즘, 이런 혼란이 매우 잦다. 내가 꼰대가 되어 권위 찾는건지, 학생들이 무례한건지....
'교무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지랖의 여왕 (0) | 2018.10.06 |
---|---|
우산이 없으니 빌려 주세요 (0) | 2018.10.05 |
수업 시간에 수업을 하는게 비정상인 사회 (0) | 2018.09.19 |
저 복교할래요 (0) | 2018.09.14 |
생기부와 추천서, 교사의 권한이라고 생각합니다만 (0) | 2018.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