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얘들은 내가 법과 정치 가르친다고 온갖 질문들을 해 댄다. 오늘은 한 학생이 공부하기 따분했는지 난민 문제에 관해 질문을 해 왔다. "선생님,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돼요?" 국제 정치를 배우려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자유주의와 현실주의 관점을 배울 때에 질문을 해 주면 딱 좋겠구먼, 타이밍이 적절치 않다. 하지만 핫 이슈니까 그들도 궁금한게다. 난 학생의 질문은 어떤 것이라도 존중하고 늘 진지하게 받는다.
그리고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면 나는 두 가지 전략을 세워 접근한다. 첫째는 내가 계속 반론을 제기하며 사고의 혼란에 빠뜨리거나, 둘째, 학생들 간에 논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논리적 딜레마에 빠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자체로서 매우 큰 학습이 된다.
난민 문제 질문을 받고 질문한 학생에게 다시 질문했다. "글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넌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대부분의 학생은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저는 받아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데, 우리가 왜 우리 돈으로 외국인들까지 먹여 살려야 돼요?" 그럼 차분하게 말한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안 받아주면 죽지만, 우리는 먹고 살기 힘든 정도잖아. 우리가 조금 더 잘 먹고 살기 위해서 그들을 사지로 모는 것이 옳은 일일까?" "옳진 않지만 국민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돼요." "옳지 않은 일인줄 알면서 해야 한다고? 국민이 인간보다 상위의 가치를 가진 존재인가?"
그럼 다른 반론을 제기하는 학생도 나선다. "저는 이제 우리나라도 먹고 살만하니 그들을 받아주고, 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야 된다고 봐요." 그렇게 말하면 나는 또 반론을 내 세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합의로 운영되는 정치 형태 아니야? 국민이 낸 세금을 사용하는데, 국민이 반대하는 것을 권력자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대로 마음대로 받아줘도 되는건가? 지금 여론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잖아. 그런데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받아줘야 해? 그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거잖아. 그래도 되나?"
그럼 학생들은 어쩌라는 말이냐며 괴로워한다. 그 괴로움이 나는 학습이라고 생각된다. 괴롭다는 것은 자신의논리에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으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맞아, 그게 그렇게 괴로운 문제야. 인간은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에 칭찬받지만 국가는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 비난받지. 인도주의와 국민국가주의는 여전히 모순되지만 국제 사회에서 공존하고 있어. 도덕적 인간으로서 우리는 마땅히 그들을 받아줘야해, 그런데 합리적 국민으로서 보면 마땅히 받아줄 수 없지. 나도 답은 모르겠어. 그런데 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다면 난 난민 심사를 해서 가능하면 관대하게 받아줬으면 좋겠어. 이제 국가는 어떤 국민들을 만들어 내느냐에 있는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들도 국민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나는 보는데 물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겠지. 분명히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어. 나중에 국제 정치 단원에서 조금 더 조사해서 이야기해보자."
그렇게 마무리했지만 이게 참, 관점 배운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둘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이게 논쟁이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고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순혈주의 민족국가 만세시대였다면 이건 논쟁꺼리조차도 안 됐을테니. 인간과 국민의 지위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이 분명히 점점 더 커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환경문제에서는 코스모폴리탄이 되라고 가르치면서 경제문제에서는 국민국가의 시민으로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 점점 버거워지고있다.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이 팡팡 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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