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명

칸토의 뿌리는 어디일까?

사회선생 2018. 6. 5. 14:22

서울대공원 코끼리 '칸토'의 사망 소식이 참 슬프다. 35살이면 아직 코끼리 나이로 한창 나이인 칸토는 6~7세에 서울대공원으로 반입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 어디에서 어떻게 살던 녀석이 과천까지 오게 됐을까? 아시아 코끼리라고 하니 동남아시아 어디메쯤 혹은 다른 나라의 동물원에서 수입해 왔을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동물판 뿌리를 써도 괜찮을거 같다. 동물원을 없애는 데에 그래도 좀 뒷받침이 될 수 있을텐데... 문학적 감수성이나 역량이 부족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울뿐이다.)

뿌리라는 소설을 보면 아프리카 초원에서 친구들과 놀던 쿤타킨테는 노예상에 잡혀 미국까지 오게 되고, 영문도 모른채 이리저리 팔려다닌다. 자유를 갈망하다가 백인주인에게 모진 폭행을 당하고 발가락도 잃고, 결국 그렇게 노예의 삶을 받아들이며 가족을 일궈 살아가지만 가족애조차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딸도 아들도 이리저리 팔려 나가고 폭행 당하는 모습을 보아야 하니까... 중학생 때였던것 같다. 너무 비참해서 당시에도 읽기가 무서웠다.  

인간도 그런데 하물며 동물은 오죽할까. 밀렵꾼의 덫에 걸린 새끼를 구하기 위해 에미가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결국 그런 에미를 밀렵군은 총으로 죽이고, 새끼는 거둬서 팔았겠지. 처음에 울면서 강하게 저항하는 새끼들을 쇠사슬과 쇠꼬챙이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폭행을 가하고, 그들은 고통에 못 이겨 야생을 거세당하고 그냥 숨만 붙은 채로 온순한 동물이 되어 이리저리 팔려다니겠지. 그렇게 동물원을 전전하면서 - 그것도 운이 좋으면 동물원이지, 서커스장에라도 가면 어땠을까? - 밥이나 얻어 먹으며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영위하다가 갔으리라. 

사람들은 동물을 저능이라고 여기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마땅히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밥만 줘도 행복해 할 거라고 여기지만  동물은 절대로, 자유를 갈망한다. 인간을 좋아하고, 인간에 의지해서 사는 데에 익숙해진 개 조차도 산책 나가서 맡는 새로운 냄새를 좋아하고, 자유롭게 들판을 뛰어다니며 즐거움을 느낀다. 하물며 야생동물은 오죽하겠는가. 밥만 주면 고마워한다는 생각은 인간의 오만이고 인간의 이기심에 불과하다. 인간에게 물어보라. 불안한 자유와 안정된 감옥 생활 중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확신컨대 동물원에 갇힌 야생 동물도 마찬가지일거다. (거기에서 태어나 거기에서 자란 동물들조차도 철창을 벗어나고 싶어할지 모른다.) 

칸토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모른다. 확실한건 그 역시 모든 본성을 거세당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동물원 생활에 적응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무기수가 된 사람이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알고 감옥 생활에 적응해 모범수가 되는 것처럼... 결코 행복했을 리가 없다. 사회성 있는 동물들은 무리를 떠나 혼자서 동떨어져 있을 때에 더욱 큰 불안감을 느끼는데, 코끼리도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그런 칸토가 뭘 잘못해서 감옥까지 오게 됐을까? 인간이야 잘못해서 감옥에 간다지만, 칸토는 아무 잘못도 없이 그렇게 와서, 온순해지도록 길들여진 후, 생기 잃고 살다가 그렇게 떠난거다. 그에게 영혼이 있다면 이제는 넓은 초원에서 가족들과 자유롭게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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