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명

동물원 교육이라니

사회선생 2018. 5. 30. 08:29

언제 어디에서 들었는지 기억은 안 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한 고대사를 연구하고 싶으면 이집트가 아니라 영국으로 가야 한다고.... 영국이 피라미드도 들고 갈 수 있었으면 들고 왔을 거라고... 아무튼 이동 가능한 역사적 유물은 모두 영국에 갖다 놨다며 제대로 연구하려면 영국에 가서 봐야 한다고 했다. 과장이었겠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의 다수 전시물들은  남의 나라에서 약탈 혹은 헐값에 매입해 온 것들이다. 우리나라의 규장각 도서들도 그 잠깐의 병인양요 때에 프랑스로 흘러 들어 갔다니 그들의 약탈 능력(?)과 문화적 안목이 놀랍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의 공도 있긴 있다. 우리는 가난하고 무지해서 가치를 모르고 훼손시키거나 헐값에 팔아치워 없어졌을 수도 있는 물건들을 귀하게(?) 모셔가서 대접하며 간직한 덕에 지금까지 잘 남아있으니 말이다. 자신들의 문화가 가장 훌륭하다고 여겼던 그들이 보기에 이집트나 인도나 중국의 고대 문명 산물들이 얼마나 신비했을까.   

그런데 문화 유물들만 들고 온게 아니다. 동물과 식물도 가져왔다. 박물관이 그런 것처럼 식물원과 동물원의 기원도 제국주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에서는 보지 못했던 낯선 동물들도 수집(?)해서 전시했다. 자신들이 그 지역을 정복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었던 게다. 동물원.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한 동안은 선진국에만 있는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북극 빙하에서 수영해야 할 곰을 열대 기후에서 연못 만들어 놓고 살라고 만들어 놓고, 아프리카 밀림에서 유유자적 살고 있는 사자를 잡아 철창에 가둬 두고 포효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꼬챙이로 찔러댔다. 뿐인가? 혹독한 훈련을 시키며 서커스로 돈까지 벌지 않았는가? 이런걸 보면서 정복의 위대함과 인간의 우월함을 자랑했던 부끄러운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부끄러운 역사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동물원이 지금은 교육과 오락이라는 명목하에 전세계 여러 나라에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깊고 깊은 대나무숲속에 살아야 할 팬더가 용인에 있고, 태평양에서 유영하고 있어야 할 돌고래가 과천에 있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폼 나게 살고 있어야 할 호랑이도 어느 지방의 작은 동물원의 쇠철창에 갇혀 있다. (늙어 죽은 백호랑이 크레인이 생각난다. 아 불쌍한 녀석!) 

앞으로 죽을 때까지 동물원 따위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물원 방문이 여전히 교육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나보다. 체험학습이 강조되면서 동물원 방문이 필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동물원을 보면서 무슨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코끼리 좀 보세요. 재미있게 생겼죠? 냄새도 나죠? 굉장히 크죠? "  그냥 유튜브나 동물다큐로 해도 충분하다. 왜 가서 직접 봐야 하는가? 이건 유물이 아니다. 생명이다. 살아있는 생명. 생명은 섣불리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코끼리를 보며 영감을 얻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가치이다. "코끼리는 원래 어디에서 사는 동물인가요? 그런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요? 철창에 갇혀 있는 기분은 어떨까요? 얘들은 어떻게 살고 싶어할까요? 우리는 얘들에게 어떻게 해 주어야 할까요?" 

살아 있는 동물을 철창에 가두고, 구경꺼리 삼으며, 그 앞에서 웃고 떠들고 때로는 조롱하고 놀리면서 그들을 관람하는 것이 매우 불쾌하고 불편하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무슨 교육적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얻는 것보다 잃는게 훨씬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동물을 직접 보는 체험교육보다 중요한 건, 생명존중교육이다. 모든 생명은 살기 위해 태어나고, 태어난 생명은 자유롭게 살다가 갈 권리가 있다고, 결코 그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우주가 있다고 말해줘야 한다. 'born free' 오래 전에 보았던 그 영화가 떠오른다. 결코 동물은 박물관의 유물이 될 수 없다. 동물원. 이제는 사라져야 할 제국주의 역사의 한 페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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