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선생님은 지각해도 왜 현관 앞에 안 세워놔요?

사회선생 2018. 5. 25. 14:19

평등권에 관해 수업 중이다. 늘 그렇듯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자신의 평등권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해 본 적 있는 사람? 쉽게 말해서 차별받아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는 사람은 그 경험을 한 번 발표해 보자."

그랬더니 여러 학생들이 학교 생활에서 억울했던 점들을 쏟아낸다. "우리는 7시 35분까지 와야 하고, 늦으면 벌을 받는데, 선생님들은 왜 더 늦게 와도 벌 안 받아요? 우린 서 있는데, 현관 앞을 지나는 선생님들을 보면 차별받는거 같아요." " 선생님들은 겨울에 외투 입고 다녀도 뭐라고 안 하면서 우리에게는 교복 입으라고 하고, 실내에서 외투 벗으라고 하고, 복장 간섭을 너무 많이 해요. 억울해요." "야, 지난 번 강당 행사할 때 학생부장선생님 봤지? 맨날 체육복만 입고 다니면서 우리에겐 체육복 입고 다니면 막 뭐래. 진짜 억울하지 않냐? 이거 차별이지?" "선생님들은 짧은 치마도 입고, 염색하고 귀걸이도 하고, 네일아트도 하는데, 왜 우리는 하면 안 돼요? 차별이에요." 

아,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나와서 놀라웠다. 그리고 인권 의식이 이렇게 왜곡돼 있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가르쳐야 하는 것이 교사의 숙명이니 어쩌랴. 교사의 입장에서 교사를 두둔하는 것 같은 발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구차하고 궁색해 보여서 싫었지만 할 수 없었다.  

"음.... 엄청 억울했나보구나. 그런데 어쩌지. 억울해도 그건 차별이라고 하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교사와 학생이 동일한 공간에 있다고 해도 각각의 지위와 역할이 다르고 그래서 다르게 대우하는 거야. 너희가 제시한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지각을 해도 학생과 교사는 다른 법 적용을 받고, 다른 방식으로 불이익을 받아. 복장 역시 마찬가지야. 일반적인 공무원 근무 규정에 준하지. 학생과 교사는 다른 지위이므로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므로 차별이라고 보긴 어려워. 무조건 기계적으로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오히려 인권 침해가 될 수 있지."

"그리고 복장이나 네일 규재를 차별이라고 접근하는건 부적절해. 만일 너희가 원하는 대로 교사들의 복장과 네일을 규제하면 너희는 평등권이 지켜지는 것이므로 인권이 실현되었다고 만족할까? 여전히 억울함은 남아있을걸. 그건 자유의 영역이기 때문이야. 잘 생각해 봐. 너희가 억울한 이유가 못하게 하는 데에 있는건지 성인들에게만 허락되었기 때문인지. 성인들에게 그런 자유를 뺴앗으면 심각한 인권침해가 되지 않을까?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인권 침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이의 제기를 자유권의 확대 쪽으로 하는 편이 바람직해보인다."

아마 예전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았을거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교사를 어려워하기 때문에 절대로 수업 시간에 이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다. 요즈음 학생들은 신나게(?) 말한다. (참고로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꽤 어려워하는 편에 속하는 교사이다.) 어느 코메디 영화처럼 '기분 나쁘면 네가 교사 해.' 이럴 수도 없고, '억울하면 자퇴하고 자유롭게 살아' 이럴 수도 없고... 세상이 변해서 이제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납득을 시켜야 하는데, 그 일이 왜 이리 구차하게 느껴지는지 원. 학생들의 피해 의식과 스트레스가 인권 의식과 만나 아주 왜곡된 인식이 형성된 것 같아서 걱정이다. "난 교사고 넌 학생이야.' 이제 이런 말은 씨도 안 먹힌다. 왜 학생과 교사에게는 다른 대우가 행해지는지를 일일이 친절하게 자세히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이미 알고 있어야 할, 혹은 알고 있다고 믿는, 심지어 내가 그 이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설명해야 하는 일은 참으로 재미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