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르치며 간증하다

사회선생 2018. 5. 18. 14:57

법과 정치 수업 시간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인간과 권리 자체의 범주가 확대되는 과정이며 동시에 권리 의식이 신장되는 과정이다.'라고 가르치는데 문득 깨달음이 왔다. 나는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 것 같다는...      


'교직 생활 초기 나는 학년 초면 늘 잘 빠진 당구 큐대를 몇 개 구해 놓았다. 체벌 도구였다. 서랍에는 미용 가위까지 구비해 두었다. 두발 규정에 어긋나는 학생들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한 도구였다. 나는 그런 행위들을 마땅히 교육이라고 생각했고, 당하는 학생들 역시 크게 저항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정당화했다. 가끔 날나리로 불렸던 자유로운 영혼들이 강하게 저항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그 보다 더 강하게 제압해서 학교를 떠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인권 침해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내가 제대로 교육을 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체벌의 기준은 있다고 생각했다. 따귀를 때리는 교사를 보면 거부감이 심했고, 무자비한 폭행으로 보이는 사건이 발생하면 교사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적인 통념 수준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학생들에게 체벌을 끊은건 정확하게 언제쯤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체벌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나름대로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체벌을 줄여 나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 체벌 금지가 입법화된 시점은 아니다 - 부터는 모든 도구를 버렸고, 체벌을 일체 하지 않았다. 그런데 머리를 자르던 가위를 버린 사건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아무리 머리 자르고 오라고 해도 악착같이 머리를 기르고 나타났던, 우리반의 엔돌핀같은 장난꾸러기 녀석이 있었다. 늘 미소 짓고 다니며,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유머로 우리를 웃게 만들었던 녀석이었다. 그랬던 녀석이 내가 머리를 자르자 고개를 푹 숙이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 때 우리 반의 분위기는 매우 숙연해졌고, 나도 참 마음이 아팠다.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학생들의 머리에 가위를 대지 않았다. 그 녀석의 눈물을 보면서 인간의 상처가 느껴졌고, 내가 무엇이라고 감히 한 인간의 자존감을 저렇게까지 무너뜨릴 수 있을까 깨달음이 왔다. 그 녀석 덕분에 인권 의식이 성장한거다.'      


지금의 학생들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경악을 하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긴 지금의 나와 그 때의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그 때의 학생들과 지금의 학생들이 달라진 것처럼 나 역시 많이 달라졌다. 우리는 이렇게 인권 의식이 달라졌다고 말하면 학생들은 인권 의식이 무엇인지, 어떻게 달라졌는지 대충 이해한다. 법과 정치 시간이 내 간증 시간이 돼 버렸다. 인권 의식이 이렇게 성장했어요 하는... 인간이 시대로부터 자유롭기가 매우 힘들다는 이야기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