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안방에서 잠을 자던 해리가 나오는 기척이 들렸다. 나와서 혼자 노나보다 했는데 나에게 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싶지 않아 시선을 컴에서 떼지 않고 "해리야 왜?" 말로만 물어봤다. 말도 못 하는 애에게 말로 물어보다니! 가만히 옆에 와서 앉아있던 해리는 내가 자기를 쳐다봐 주지 않자 앞발을 들어서 의자를 툭툭 쳤다. '나 좀 봐봐'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거다. 내가 쳐다보자 앉은 채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간절히 나를 올려다본다. '왜? 뭐 해 줘" 하면서 벌떡 일어났더니 앞장 선다. 그리고 물그릇 앞에 섰다. 보니까 물이 없다. 물그릇에 물을 채워줬더니 꽤 많이 먹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 물 먹으러 나왔는데 물그릇이 비었어. 물 좀 줘.'
개들도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언어가 아니라 몸짓과 눈빛과 꼬리로... 내가 정교하게 알아듣지 못할 뿐이다. 만약에 내가 눈길도 주지 않고, 그러거나 말거나 내 할 일만 했으면 해리는 혼자 그러다가 쓸쓸히 나가 버렸을거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나를 신뢰하지 않게 될 거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조차, 개가 말을 안 듣는다는 고민은 많이 해도 내가 개의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저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내게 하는지 속 시원히 알고 싶은데 못 알아듣겠어요. 어떻게 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아이의 단순한 몸짓이나 표정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아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즉각적으로 반응하면 아이는 부모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아이로 성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아이는 크게 사고치지 않는다. 그래도 부모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들도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 속을 썩인다고만 한다. 그리고 그런 채로 성장한 이후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말을 안 한다,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학교에서 부모들과 상담하면서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미치겠어요.'는 많이 들어봤지만 '아이가 원하는게 뭔지 몰라서 미치겠어요. 아이와 좀 이야기를 잘 해 보고 싶은데 잘 안 돼요.' 이런 이야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하긴 10대 후반인 아이들이 맘만 먹으면 부모 속 썩이는건 일도 아닐테니 자신들만의 언어로 부모 왕따 시키고, 속 썩이고, 이제 내 세상이다 하면서 사는 아이들도 꽤 있다.
인간이든 개든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에 귀 기울여서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반응해주는건 바르게 성장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막가파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도 부모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도 마찬가지 아닐까. 귀 기울여 들어주고, 봐 주고, 공감해주고, 대답해주고... 우리네 아이들에게도 대뜸 훈계부터 하려고 하지 말고 그렇게 먼저 해 보면 어떨까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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