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경험한 바로 우리 해리는 순하고 영리하다. 매너도 좋은 편인데, 엘베에 타면 구석탱이에 딱 앚아서 타는 사람들 구경한다. 대부분의 이웃들은 '아고~ 고 녀석 순하네, 착하네, 귀엽네' 하면서 웃으며 탄다. 아주 가끔 엘베를 같이 기다리다가 같이 타려고 하면 멈칫 하는 사람이 있다. 먼저 개를 무서워한다고 밝혀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한 채 발을 동동구른다. 그냥 개만 봐도 공포감에 몸둘 바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개를 무서워하세요?' 물으니 그렇단다. '그럼 먼저 올라가세요' 한다. 문제는 나도 엘베 타고 내려오는데 그런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때이다. 타려다가 멈칫한다. 그러면 대부분은 그 쪽에서 먼저 '내려가세요'라고 한다. 왜냐하면 다시 개와 내가 내리는 과정이 번거오룰 뿐더러 그 무서운 개를 더 오래 봐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공포감이 심하면 먼저 내려가라고 해 주면 좋겠는데 굳이 타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긴 하지만.
해리와 엘베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중간에 엘베가 섰다. 그런데 한 아주머니가 히스테리칼하게 소리를 꽥 지른다. 나도 너무 놀래서 같이 소리지를 뻔 했다. 개가 너무 무섭다는거다. 그렇게 무서우면 다음 엘베를 타면 되지 굳이 타더니 얌전히 구석에서 꼼짝 않고 앉아있는 개에게 자꾸 손짓을 하며 소리를 지른다. "쳐다보지 마. 쳐다보지 마. 무서워." 엘베에서 낑소리 한 번 안 내던 해리가 그 때에는 꽝꽝 짖었다. 힘줘서 목줄 부여잡고, 구석탱이에 얌전히 앉아 있는 개를 자극하니 나도 억울했는데, 지 딴에도 억울하고 무서웠던게다.
연예인 최시원의 개가 사람을 물었는데, 그게 직접적 원인이 되어 물린 사람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개 공포증이 사회에 매우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 아파트 게시판에도 개 조심해 달라는 글이 있기에 들어가 봤더니 그 동안 개에게 불만 많았던 사람들이 꽤 많았나보다. '개 무섭다, 개 주인이 안하무인이다. 엘베에 개가 같이 타는게 싫다.' 이런 얘기들이 많다. 내 딴에는 해리의 경험이 떠올라서 아무리 순한 개라도 사람이 공격적으로 굴면 변할 수 있으니 웬만하면 소리지르거나 과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하나 달았다. 그랬더니 댓글로 막말이 난무한다. '당신 개가 사람 물면 책임질 수 있어?'부터 '개가 우선이야 사람이 우선이야' 라는 말도 안 되는 논점 일탈의 공격. 개가 너무 무서우면 같이 타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더니 왜 개가 먼저 타고 내려 가야 하냐면서 억울하단다. 그렇다고 그 층에서 기다리는데 내리면 더 무섭지 않겠는가? 배려해서 한 말인데...
요즈음은 개 가진 사람이 죄인이다. 사실 개에 의한 사망보다 사람에 의한 사망이 훨씬 많다. 심지어 확률로만 따지면 개에 물려 죽는 사람보다 말벌에 쏘여 죽는 사람이 훨씬 많고, 진드기에 물려 죽는 사람도 개에 물려 죽는 사람보다는 많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개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주관적 공포심이 매우 크다. 개가 사람 죽였다는 것은 매우 자극적인 이슈가 되어 기사화되고, 모든 개는 사람을 물어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기정 사실이 돼 버린다. 심지어 사회적 상류층이 소유한 개가 그랬다면 거기에는 계층 의식까지 더해져 더해져 막말이 난무한다.
제발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을 찾자. 어떻게 하는게 위험한 개로부터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논의를 하자. 갑자기 개 가진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며 단죄하려고 하지 말고. 우리 가족들은 많이 억울하다. 심지어 토리는 동네 맹견에게 물려 지금 수술받고 치료 중인데...
개나 고양이의 등록제를 넘어 허가제로 가서 교육 받은 사람들만 키우게 하고, 사적인 동물 매매를 불법화하고, 동물 관리를 정부에서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좋겠다. 개를 키울 만한 사람들이 교육받은 다음에 정부 기관에서 분양 받아 키우고, 수시로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중간 중간 점검하고... 개나 사람이나 교육을 제대로 받으면 아무 데에서나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사람도 살고 개도 살아야지, 사람은 개 무섭다고 덜덜 떨고, 개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손가락질 당하며 견주와 함께 문제 취급받는 것이 불쾌하다. 만일 우리 해리가 말할 수 있으면 엘베에서 그 아줌마에게 말했으리라. "저 얌전히 있는데 왜 소리지르세요? 가만히 있을게요. 그냥 가만히 두세요. 당신이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제가 더 이상 해 드릴 수 있는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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