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 고양이나 사람이나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 어떤 사람들과 함께 사느냐에 따라 소위 팔자가 완전히 달라진다. 의지 따위는 완전히 배제된 운명이 삶을 결정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운명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도 인간대로 동물대로 제대로 그 답게 존중받으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여기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처음으로 반려묘가 아플 때에 간병 휴직을 낼 수 있다는 판례가 나왔단다. 이탈리아의 개와 고양이들은 적어도 생사를 왔다 갔다 할 때에 주인이 옆에서 지켜줄 수 있으니 다른 나라 반려동물보다 훨씬 행복할 거 같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사람 식구가 아파도 휴직은 커녕 며칠 휴가 내는 것도 매우 눈치 보이는 사회이다. 하물며 개가 아파서 휴직을 하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올까? 사회 부적응자 취급받기 십상이고, 개가 아파서 조퇴해야겠다고 하면 정신 상태를 의심받게 될 거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면 못 가거나 거짓말을 하고 가거나 둘 중 하나이다.
나에게도 경험이 있다. 우리 미미가 아프고, 죽고... 사람 병 간호하는 것 만큼 힘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발설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회의가 있어도 사정이 있어서 못 간다고만 해야 했고, 약속이 있어도 일이 있어 못 간다고 했다. 아주 가까운 친구가 아니면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정서적 공감이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돈이 남아 돈다, 그 따위 개 한 마리 아프다고 무슨 난리냐, 사람에게나 잘 할 것이지' 등등 얼마나 많은 말들이 오고 갈지 안다.
하지만 개를 키우는 사람에게 개는 그냥 가족이다. 나와 다르게 생겼고, 나와 다르게 말하고, 나와 다른 것을 먹지만 항상 희로애락의 감정을 나누고, 함께 먹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식구. 딱 그냥 식구이다. 그런데 식구가 아픈데 어떻게 그냥 구경만 하는가? 내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고통을 줄여줄 수밖에 없다. 그냥 그렇게 된다.
우리 미미는 내가 방학 중일 때에 심하게 앓다가 봄방학이 끝나갈 때 쯤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런데 만일 학기 중이라면 어땠을까, 나 역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이탈리아의 소식을 들으며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는 생각에 위로가 되면서도 우리에게는 언제쯤 저런 날이 오려나 씁쓸해진다. 그렇다고 이탈리아로 갈 수도 없고. 개나 고양이는 유럽에서 태어나는 편이 훨씬 나았을텐데... 하필 한국에서 태어나서... 그래도 학대하는 방임하는 사람에게 안 가고 나에게 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 진짜 사람이나 개나 고양이나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든 제대로 좀 살게 해 주면 안 되는지... 사람에게조차 팍팍한 사회이니 동물에게는 오죽할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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