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뒷산에 유기견 몇 마리가 있다. 산에 올라가면 늘 함께 다니는 황구와 백구가 있고, 어미개와 새끼개로 보이는 백구 두 마리가 다정하게 붙어 나닌다. 두 녀석이 노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튼 네 마리가 함께 다니는 건 아니고 둘둘씩 짝지어 다니는 걸 종종 봤다. 황구와 백구는 생전 짖는 법도 없고, 사람이 나타나면 자기들이 피해 다니는데, 새끼와 있는 백구는 경계심이 많아서 사람을 보면 짖는다. 어미의 보호 본능이리라... 하지만 그 뿐 절대로 다가오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이 다가가려고 하거나 소리라도 지르면 더 짖는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야생 동물도 인간을 보면 오히려 피하지,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교통 사고가 날 확률보다 낮다.
종종 만났다는 이유로 나 혼자 정든 황구와 백구가 흥미로운 냄새들을 따라 동네까지 내려왔나보다. 아파트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보니 경찰과 소방서에 신고했고, 그들이 곧 엽사를 불러와서 살처분하겠다고 했다며 다행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섬뜩했다. 걔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죽이기까지 해야 하는지, 어떻게 죽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지 그것이야말로 폭력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냥 덩치가 커서 무섭다는 이유로 아직 아무에게도 해꼬지를 하지 않은 멀쩡한 생명을 죽인다니... 이런 폭력이 어디 있단 말인가? 모르긴해도 유기를 한 사람의 잘못이지, 개의 잘못이 아니건만 왜 개는 항상 사람이 잘못한 것에 대해 목숨까지 바쳐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런 부당하고 부정의한 일이 어디있단 말인가? 위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생포해서 보호소로 보내 입양을 추진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큰 개들은 입양이 잘 안 되지만...설사 그렇다해도 일단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흉포하게 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살처분하는 것은 지나친 인간중심주의적이고 생명을 경시하는 우리네 모습이다.
인간 중심으로 보면 유기견이 교통 사고를 유발할 위험성이나 횡포해질 위험성 있다. 부정하지 않는다. (개 중심으로 보면 교통 사고 당할 가능성과 사람에게 해꼬지 당할 가능성이 있고, 사실 이렇게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범죄를 저지르는데 개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면 생포해서 살 수 있도록, 제대로 살 기회를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 함부로 죽이는 것은 안 된다. 단지 크다는 이유로, 무섭다는 이유로 - 이것도 얼마나 주관적인가? 나는 안 무섭다. 내가 먼저 공격하거나 소리지르지 않는 한 개들이 먼저 공격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그런 교육을 시키면 위험 가능성은 훨씬 낮아진다. - 멀쩡한 개를 죽이는 것을 문명이라고 여기는 사회...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다. 차라리 도시의 유기견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후진국의 도시들이 더 문명화된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부디 황구와 백구가 멀리 도망가서 절대로 살처분되지 않고 오래 오래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 어미 백구가 그렇게 애틋하게 여기는 새끼를 데리고 어딘가로 숨어 들어가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러기에 인간은 모든 산을, 모든 들을, 모든 자연을 빼앗아버렸으니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만일 그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덩치 크고 무섭게 생긴 개는 다니지도 못하나요? 저 나쁜 짓 안 했는데요...저도 어떻게든 살아야 하잖아요. 사람들이 싫어한대서 저도 숨어 살고 싶은데, 숨을 데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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