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그깟 한 시간에 비루해지는...

사회선생 2017. 2. 7. 23:30

얼마든지 16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데 17시간으로 만들어 온 시수배정표에 짜증나서 나도 이번에는 목소리를 냈다. 학교 생활, 일희일비하지 말고 조용히 살자고 다짐한 터라 웬만하면 목소리 안 내려고 했건만 위(?)에서 몇 몇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시수를 정해서 통보해 온 것도 기분 나쁜데, 심지어 17시간이다. 일단 16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수업 시간 한 시간을 줄이려고 이리 저리 머리 굴리다가 굉장히 힘들게 해결(?)했다. 그 과정에서 하고픈 말이 많지만 이하 생략. 

충분히 고르게 분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만을 제기하면 너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본다며 매우 도덕적인 사람인척 코스프레하는 데에 비위 상해서 원. (얼마든지 고르게 배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뜻을 거스르는 자를 부도덕한 자로 매도하려고 한다. 이게 노동 현장에서 많이 발생하는 일인데... 전문용어로 뭐더라... 아무튼!)

시수 문제로 하루 종일 스트레스 받다가 퇴근 후에 교과서 회의를 하러 갔다. 그들과 자연스럽게 시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17에서 한 시간 줄이려고 정말 치사하고 구질구질하게 그리고 피곤하게 하루를 보내고 왔는데 그들은 시수가 환상이었다. 국제고에 있는 후배 왈, "적은 사람은 8시간 하는데 저는 9시간이에요. 그나마 절반은 외국인과 코티칭이고...그 때 저희 학교에 지원을 하시라니까... ", 자율고에 있는 후배 왈, "저도 9시간이에요. 교무부장이라서... 그런데 평교사도 13시간인 사람들이 많아요. 선배 연배면 대부분 13시간 되는데..." 그리고 일반고에 있는 두 사람은 각각 16, 18. 그 둘의 차이는 담임과 비담임. 나는 내가 국제고나 자사고에 있는 교사들과 별로 차이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수의 차이는 엄청나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절이 싫어서 중이 떠나겠다고 갈 곳 마련해 놓고 다른 학교로 떠나게 해 달라고 그렇게 읍소했건만, 학교를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차단 당한 적이 있다. 당시 교장은 담임을 중간에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없다며 도장만 찍어주면 되는 일을 회피하면서 나의 앞길을 막았다. 그리고 난 눌러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벌써 10년 전쯤 일이다. 그냥 잊고 살았는데, 문득문득 학교 생활이 비루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그 때의 일이 떠오른다. 

적어도 그 때에 옮겼으면 논문을 쓰기 위해서 휴직도 할 수 있고, 다양한 학교들에 지원해서 갈 수도 있었을거고, 그럼 모르긴해도 새로운 학습 프로그램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고민은 해도 16이네 17이네 치사하게 씨름하고 앉아 있었을 가능성은 적다. 연구하고 가르칠 때에는 교직이 적성에 딱 맞는 것 같은데, 이런 일 한 번씩 겪고 나면 이 학교가 참 싫어진다. 내가 내 수업시수만 특별히 헤택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담임 16시간이라는 원칙만이라도 지켜달라는 건데 당연한 권리조차도 저항의 액션을 취해야만 간신히 실현될 수 있는 학교. 여전히 절은 싫은데 이제 늙은 중은 떠날 길이 없다. 퇴직 외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