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환경조사서에 소득 수준까지 명시하라고 했던 어느 학교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는 시대이다. 그런데 교육청에서는 여전히 특수 학생을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낸다. '특수 학생'이라는 말도 편견에 가득찬 말 같아서 매우 거슬리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가관이다. 일단 공문에 첨부된 양식에서 특수 학생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난 아무리 머릴 굴려봐도 이게 왜 특수 학생이라는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군인, 경찰, 교육자, 교역자(종교), 보훈(독립운동 등), 국가 유공자, 제대 군인, 한부모(편부 혹은 편모 명확히 구분해서)
국민기초생활보장금 수급자, 차상위 계층 대상자, 체육 특기자, 특수교육 대상자, 다문화 가정(혹은 외국인 근로자 혹은 북한
이탈주민) 자녀, 귀국 자녀, 보장시설 거주자, 교직원 유자녀, 교통사고 사망 유자녀, 소녀가장, 위탁 학생 순으로 기재.
그리고 보고서 양식에는 보호자의 근무지와 지위, 집과 직장의 전화 번호까지 쓰라고 돼 있다. 문제는 나도 모른다는거다. 학생이 면담 중 적극적으로 가정사를 밝히면 알게 되겠지만, 이런 특수한 가정의 경우에 더더욱 밝히기를 꺼려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말하고 싶지 않다면 그걸로 끝. 더 이상 알 필요도 없고, 담임으로서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교육청에서는 왜 이런 불편한 일을 담임 교사에게 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시대착오적인 행정적 편의주의이다. 물론 교육부 차원의 데이터가 필요하고, 이를 토대로 교육 정책을 세워야 할테니 정보 입수는 필요할게다. 그렇다면 행정부서 간의 협조로 정보를 입수하면 된다. 주민자치센터에 등록된 정보들이 -적어도 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것보다 정확한 - 있지 않은가? 또 뉴스에 한번 나와야 사라지려나. 학년초마다 늘 관례적으로 해 오는 특수학생현황 조사.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우리반 학생 한 명은 자기소개서도 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전학년 담임에게 들어서 한부모 가정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아무 것도 없다. 생기부를 보면 아버지 이름은 나온다. 하지만 교육청의 특수학생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고서 양식을 '성실하게' 채우려면 학생이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 봐야 한다.
"저 죄송하지만 제가 교육청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어서 정보가 필요한데요... 아버지 직업은 어떻게 되시나요? 근무지는 어디에요? 지위는 무엇인가요?" 또라이 담임 취급 당하며 쌍욕 먹기 십상이다. 그래서 그냥 난 대충 내 맘대로 '자영업'이라고 써서 냈다. 또라이 담임이 될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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