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수능을 잘 봐도 걱정이다

사회선생 2016. 11. 18. 19:40

아무리 생각해도 수시와 정시 일정이 이원화되어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회적으로 공교육의 정상화를 가로 막을 뿐 아니라, 학생 개개인에게도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오늘 우리반 학생을 통해서 다시 그 생각이 강해졌다.

우리 반에 모의 수능을 보면 평균 2등급 정도 받는 학생이 있다. 내신은 2등급대 중반. 논술을 제법 쓰기 때문에 최저에 맞춰 논술 전형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시립대, 경희대, 중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고려대 논술 전형에 응시했다. 그리고 시립대 논술 시험은 이미 치렀다. 시립대는 수능 최저 조건이 없기 때문에 안전망으로 넣어 둔 학교이다. 모의고사에서 드물게 3등급이나 4등급도 나온 적이 있어서 최저 없는 시립대도 지원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어제 수능을 보고 와서 내게 면담을 요청했다. "선생님, 저 수능을 너무 잘 본 거 같아요. 문제 풀고, 시간 여유가 있어서 정답도 다 적어 와서 채점했는데, 정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채점해 보니 잘 봤어요. 그런데 시립대에 합격하면 어떡하죠?" 국영수탐의 원점수가 98점, 92점, 100점, 50점, 48점이다. 거의 완벽한 1등급이다. 게다가 이 학생은 철학과에 진학하여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이라 충분히 SKY의 철학과에 갈 수 있는 점수이다. 그런데 시립대 합격을 고민해야 한다. 시험 잘 본 것을 고민하고, 떨어지기를 바래야 하는 학생이 존재한다면 이는 분명히 잘못된 입시 제도이다.

현재 수시는 2학기 초에 접수하고 심지어 학교 수업을 빠지고 면접이나 논술 시험을 보러 가야 한다. 수시로 대학 가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2학기가 되면 3학년의 경우 학교는 이미 파장 분위기이다. 교사는 교재 연구보다 면담을 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학생들 역시 수업은 둘째치고, 1학기에는 눈에 불이 퇴게 공부했던 모습이 있었나 싶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장난처럼 대충 본다. 모든 것이 파행이다. 만일 3학년 기말고사까지 끝나고 수시와 정시가 함께 진행되면 학생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 하게 되고, 이는 그 자체로서 교육적이며,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가능해진다.

또한 현재 수시의 내신은 완전한 내신이 아니다. 수시는 내신과 학교 활동을 가지고 가는 제도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내신은 3학년 1학기의 내신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합리적 선택을 가로 막는다. 내신이 좋은지, 수능 성적이 좋은지 아직 나오지도 않은 결과를 두고 학생들은 자신들이 미래를 점쳐서 예측한 후에 지원해야 한다. 입시 일정만 조정하면 개인적으로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왜 그걸 가로 막는가? 왜 끝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예상보다 수능을 훨씬 잘 본 아이들이 단지 수시에 지원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보아야 하는가? 우리반 학생같은 아이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은 불공정하다. 분명히 우리반 학생만 경험하는 것은 아니리라.

수시와 정시 일정이 이원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학생과 학교를 생각한다면 - 입시에서 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 수시와 정시 일정은 3학년 기말고사가 끝나고 수능 성적이 나온 이후에 잡혀야 한다. 우리네 입시 제도는 너무 대학교의 편의와 이익에 맞춰져 있는건 아닌지, 그래서 그보다 더 중요한 걸 간과하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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