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인과 관계는 알 수 없다. 2학기가 되어서 이제 수능을 포기한 학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인지, 내신이나 추천서가 이제 다 끝난 시점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몇몇 자유로운 영혼들의 활개로 학급 분위기가 무너진건지, 날씨가 추워져서 정말 감기 몸살에 걸리거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학생이 많아진건지,...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고3 교실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담임의 훈계 따위는 씨도 안 먹힌다. 성격상 원래 말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잔소리를 안 하기 때문에 어쩌다가 한 번씩 작정하고 이야기하면 그래도 찔끔하며 말이 먹혔는데, 이젠 아니다. 거의 표정이 '왜 저래?'다. 아니면 그냥 멍 때리고 있다. 이런 적이 있었던가? 별로 기억에 없다. 확실히 변했다. 변하고 있다.
담임 교사의 책임 회피성 분석인지 모르겠지만 시점으로 따지자면 예체능계 학생 몇몇이 실기를 이유로 무단 조퇴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교실이 무너졌다. 교실이 교실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한다. 교실 수업은 몇몇 학생들만 의무적으로 듣고 있고 규칙은 무너졌다. 아침에 무단 지각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고, 몸을 움직이는 예체능을 하는 학생들은 결석이 잦아졌다. 물론 그에 편승하여 별로 학습 의지가 없었던 학생들도 맨날 아프다. 갑자기 그들도 지각이나 조퇴가 많다. 하긴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많은 학생들 입장에서 이제 학교는 어차피 자습실이고 더 이상 필요한 것 (내신 혹은 추천서나 생기부의 좋은 기록 등)도 없는데 왜 내가 시간 맞춰 교복 단정히 입고 가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거다.
원래 공부가 불가능했던 아이들이 힘들게 여기까지 온 건데,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학생들이 증가했고, 예체능 학생들의 경우에는 실기라도 해서 학교를 도피해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고 싶은거다. 이제 그들에게 학교는 의미가 없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변한 건 별로 없다. 그냥 참고 다니다가 이젠 참지 않을 뿐? 하지만 이해는 이해고, 해결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런 학생들을 수수 방관하면서 그저 출석부 정리나 하면 되는건지, 그런 학생들로 인해서 나쁜 영향을 받는 학생들이 생기는 것을 그냥 지켜만 봐야 하는건지, 할 수 없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다. 담임으로서의 무능력을 실감한다. 그런데 내 잘못만은 아닌 것 같아서 조금 억울한 기분도 든다. 어떻게 해야 학교가 모든 학생들에게 즐겁고 의미있으며, 공동체의 질서를 깨우치는 곳이 될 수 있을까? 답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우리네 학교 교육이 입시라는 초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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