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테트리스와 알파고

사회선생 2016. 3. 10. 23:23

대학생 때 쯤이었다. 몇 달 동안 테트리스에 빠져있었다. 집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켠 순간부터 테트리스를 하다보면 서 너 시간은 후딱 가 버리기 일수였다. 아무리 오랫동안 게임을 해도 끝내면서 '아, 기분좋다, 만족스럽다.' 느꼈던 적은 없다. 할수록 싫증 나는 것이 아니라 더 점수를 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더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렸다. 삐에로가 팡파레를 몇 번이나 쳐 주는 단계까지 가도 내가 테트리스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보내던 어느날 문득 깨달음(?)이 왔다. 내가 게임을 하는게 아니라 게임 프로그램이 나를 갖고 놀고 있다는...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하는 기분. 그냥 난 농락당하고 있었던게다. 그 깨달음을 얻은 이후 나는 어떤 게임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어차피 인간이 이기도록 만들어 놓은 게임이 아니었다. 그렇게 테트리스는 나의 최초이자 최후의 게임이 되었다.  

어제 오늘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경기가 세간의 화제다. 나는 문득 그 옛날의 테트리스가 생각났다. 아무리 연습해도 테트리스를 이길 수는 없었던... 물론 테트리스와 바둑을 비교할 수는 없다. 테트리스가 1차원의 순발력이나 요구하는 게임이라면 바둑은 4차원의 두뇌 게임이다. 단순 기술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경우의 수- 거의 무한에 가깝다고 한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직관과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계산은 빨라도 인간의 직관과 창의성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았는데, 이런 우리의 기대(?)는 무너졌다. 세계 최고의 기사인 이세돌은 내리 두 판을 알파고에게 빼앗겼다. 이세돌이 읽을 수 있는 경우의 수와 선택은 알파고를 능가하지 못했다.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서 그 중 가장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확률의 수를 찾아 바둑알을 놓는다는 사실이 단순 계산의 결과라고 하더라도 이를 창의적이라고 못 할 수 없는 이유는 없다.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의 수를 토대로 새로운 조합을 했다면 그 자체가 창의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이다.  

알파고를 만든 회사인 구글의 딥 마인드 연구자들은 환호를 하고 있겠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 알파고가 왜 여기에 이런 수를 두었는지 알파고를 만든 사람도 모른다. 단지 알파고가 수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한 끝에 승률이 높은 곳에 두었다는 사실만 알 뿐... 쓸데없는 걱정병이 도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인간이 만들어도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산업화 과정을 통해서도 경험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었다고 인간이 항상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영화 아이로봇이나 AI, 바이센테니얼맨의 주인공을 논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찝찝한 이 기분. 인간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기 때문은 아니다. 어차피 알파고도 인간이 만들었으니... 중요한 것은 인간이 만들었다고 인간이 기계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남은 세 판은 이세돌 기사가 이겨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분명 나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정말 앞으로 인간의 영역은 예술 외에는 남지 않을까? 어쩌면 예술에서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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