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학교에도 있다

사회선생 2015. 9. 14. 23:00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학교에도 앨리스는 있다. 매일 선생님들에게 질문하러 왔다. 수업 시간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필기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시험만 보면 늘 바닥이었다. 자기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 늘 희망에 가득차 있었다. 난 언젠가 꼭 성적이 오를거고, 대학에 갈 거고, 성공할 거라고...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는다고... 그러나 앨리스는 대학 입시에 실패했고,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나는 그 때에 차마 말은 못했지만 차라리 그렇게 한 번쯤 깨져 보는 게 앞으로 긴 인생을 사는 데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학년 초에 면담을 하면서 도저히 올릴 수 없는 성적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 안스러웠다. 이를테면 4등급인데 서울대에 가겠다는 식이었다. 나는 앨리스에게 가고 싶은 대학 말고 갈 수 있는 대학으로 수준을 조금 낮춰서 목표를 잡아보자고 했다가 한 마디 들었다. "선생님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셔야지, 왜 벌써부터 그 희망을 꺾으려고 하세요? 전 할 수 있어요!" 정말 당황스러웠다.   

안국진 감독은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얻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찍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그 분야 최고의 기술자가 되어도 노동자 계급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을 영화적 언어로 표현해 보고 싶었단다. 굳이 자본주의 사회 운운하지 않아도 간혹 우리는 뭐든 성실히 하면 이루어진다는 왜곡된 허상을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허상을 향해 미친듯이 달음질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 교실 안에서도 많은 앨리스들을 본다. 물론 앨리스는 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좋은 모범생들이다. 더 이상 성실할 수 없을 만큼 성실하지만 별로 결과는 좋지 않다. 그리고 그 실책의 원인을 자신에게서만 찾으려고 한다. 그럴 때면 나도 앨리스에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 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런 앨리스들이 너무 많이 나오면 정말 영화 속 앨리스처럼 확 돌아버릴 지도 모른다는 점. 죽겠다며 자기 같은 돌대라기는 살 필요가 없다면서 자학했던 몇 년 전의 앨리스를 학교에서 또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여전히 앨리스들은 있다. 아, 뭐라고 얘기해 주어야 할까? 성실한 앨리스들을 만나는 것이 불성실한 막가파 말썽쟁이들을 만나는 것보다 두려울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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