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시골에 취미 삼아 아주 작은 텃밭을 꾸리신다. 수확량이라고 해 봐야 고구마 두 박스, 고추와 깻잎, 상추 약간. 사방 3~4 미터나 될까? 노인들이 소일꺼리 삼아 하는 작은 텃밭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 곳에 다녀오신 부모님이 그 텃밭에 울타리를 치고 왔다는 것 아닌가? 지난 번에 내가 놀러 갔을 때에 주변 밭들이 울타리를 쳐 놓아서 '아니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울타리까지 쳐 놔? 통행하기만 불편하네...' 속으로 투덜거렸다. 나중에 알고보니 고라니가 와서 작물을 뜯어 먹기 때문이란다.
"수확한 작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고라니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울타리를 쳐요? 걔들도 먹고 살게 좀 나누어 줍시다." 그랬더니 "아니 왜 힘들게 농사 지은 작물을 고라니에게 다 바치니?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이러신다. "따지고 보면 그 땅도 우리 땅이 아니지. 인간들이 자기들끼리 자기들의 룰대로 차지한 후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횡포지. 조금만 공간이 있어도 다 밀어내고 개간을 해 대니 걔들도 점점 먹고 살게 없어져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 곁까지 내려와 밭작물을 탐내는거잖아. 걔들인들 인간 근처까지 내려오고 싶겠어요? 그냥 걔들에게 보시한다고 생각하고 울타리 걷어내고 우리 밭 작물이라도 먹게 해 줍시다." "싫어, 얘. 다른 데에도 먹을 거 얼마든지 많아. 힘들게 가꾸고 수확해 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데 고라니에게 뜯기면 남는 것도 없어."
우리 토리와 해리때문에 동물을 매우 좋아하게 된, 그래서 동네 길고양이와도 친하게 지내게 된 엄마조차도 이렇게 이야기를 할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동물에 대한 측은지심이 매우 강한데에도 그건 어디까지나 내 것(?)을 탐하지 않을 때를 전제로 한 것일 뿐인가보다. 내가 하도 난리를 쳐 대니 도토리 줍기와 산열매 따기 같은 일을 하지는 않으시는데, 그래도 내 것이라고 생각되는 밭은 지키고 싶으신가보다. 울타리 걷어내기 설득에는 실패했다. 부모님도 설득시키지 못하는 나. 과연 누구를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까? 고라니는 보호종도 아니고 천적이 많아서 개체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해도 나에게는 살고 싶어하는 생명으로만 보이는데...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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