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학교로 걸려온 전화 한 통

사회선생 2015. 5. 7. 16:00

 "아이, 괜히 전화받았어." 교무실에서 한 교사가 투덜거리며 전화를 끊는다. 무슨 전화인가 했더니 어느 할아버지였는데, 어버이날에 부모님 좀 찾아 뵈라고 교사들, 특히 여교사들에게 전달하라고, 그렇게 안 하면 내가 이사장에게 연락하겠다고 했단다. 이야기인즉, '여교사라는 사람들이 부모님도 안 찾아뵙고 그렇게 사냐, 내가 이번에도 그러면 가만있지 않겠으니 미리 경고해라' 로 요약된다. 추측컨대 불편한 가정사로 인해 시부모와 연을 끊고 사는 어느 집안의 시아버지가 어버이날이 다가오자 화가 나서 학교로 전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들 누구 시아버지일까 - 다들 친아버지가 그랬을 리는 없고, 분명히 시아버지일것이라고 단정했다. - 궁금해 했지만 사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그리고 누구라고 밝혀지면 그 대상자는 얼마나 불편하고 기분이 나쁘겠나? 자신의 별로 밝히고 싶지 않은 가정사가 직장동료들에게 공개되었으니 말이다. 그럴 때에는 누구일까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배려이건만... (늘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사실 중에는 별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닌 것들이 많다.)

 아무튼 그 해프닝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교사'에게는 여전히 엄격한 사회적 기대가 있다는 점, '여교사'들이 시부모들과의 관계를 맺는 데에 여전히 어려움이 많이 있구나 하는 점이다. 과연 장인이나 장모중에서 사위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고 학교까지 전화를 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가족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친정 아버지 혹은 아직 미혼인 사람의 아버지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굳이 '여교사들'이라고 강조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교사라는 사람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까? 하긴 차라리 그렇다면 더 낫겠다. 적어도 그렇다면 그건 개인적인 가족사일 뿐이니까... 하지만 시아버지라면 우리 사회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가부장제 문화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씁쓸하다. 아, 하고 싶은 말들 많지만, 나도 여기서 끝.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  (0) 2015.06.25
정청래와 SNS  (0) 2015.05.12
잔혹동시  (0) 2015.05.06
불평등의 속성은 같건만  (0) 2015.05.01
문재인의 패착  (0) 2015.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