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잔혹동시

사회선생 2015. 5. 6. 19:54

 잔혹동시. 난 박찬욱감독의 영화 제목인 줄 알았다. 제목이 겉으로는 선량한 척 하지만 추하고 음습한 인간의 내면을 보여줄 법한 영화 제목 같았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현실 사회를 속에서 잔혹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을 풍자한 영화같다고나 할까... '친절한' 금자씨의 '잔인한' 복수만큼 아이러니한 영화 제목으로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잔혹동시라는 새로운 쟝르가 탄생한 듯 하다. 10세 어린이가 쓴 동시 아닌 동시를 일컫는 말로 회자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시인지 그저 몇 편 뉴스로 보도되는 것만 보았는데, 가히 엽기적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그렇게 만든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 시적(?) 묘사가 섬칫하다. 도대체 국문학에서는 그런 것을 시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교육적으로는 옳지 않다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이야말로 '순수한 동심'이라며 옹호하는 사람을 보고 기겁했다. 아마 그 동시집을 출판한 출판사의 대표도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었나? 어떻게 시집을 출판할 생각을 했는지... 뒤늦게라도 전량 폐기한다고 했다니 다행이다. 어린이가 잠자리를 귀엽다고 하면서 날개와 다리를 뜯어내는 행위를 순수한 동심이라고 보는 것은 어폐가 있다. 어린이의 순수함을 말할 때의 그 순수는 인간의 본성이 아름답다는 것에 기인하여 나온 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흠과 티가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 거기에 폭력욕, 부도덕, 잔인함을 더할 수는 없다.    

 10살 어린이가 부모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밝힌 시를 썼다. 어른들이 그 시를 보고 아름답고 솔직하다고 칭찬해 줄 것이 아니라 아무리 밉다는 마음이 생겨도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야 했다. 우리네 현실이 힘들고 어려운 것과 어린이에게 그것을 마음 가는대로 생각하고 표현하라고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그런 것은 제발 박찬욱 영화에서나 보자. 현실에서, 교실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결코 만나고 싶지 않다. 교육이 왜 필요한가? 이래 저래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그런 현실을 방조한 책임, 그런 시를 출판해 준 책임 등등.

 

p.s.  문득 든 생각. 혹시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아이에게 그런 시를 쓰도록 유도 혹은 종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제발 아이들까지 이용하지는 말자. 아무리 나의 정치적 신념이 옳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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