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 돼지가 잔인하게 도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해 보자. 목격자는 당분간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을 때에 그 장면이 떠올라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먹기 불편할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불편한 감정이 지속되는 기간이 길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일정 시간이 흐르면 다시 예전과 마찬가지로 소나 돼지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서 불쾌한 기분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자. 소나 돼지가 인간의 건강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면 어떨까? 여전히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을 때에 매우 찜찜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지한 사실은 왜 오랫동안 머리에 남아, 소나 돼지고기를 접할 때마다 떠오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소나 돼지고기를 끊지는 못할 것이다.
매일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일회용 컵을 만들기 위해서 숲이 사라지고, 그 숲속에 사는 동물들이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한다고 해서, 그리고 숲이 사라졌을 때의 폐해를 체계적으로 이해한다고 해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게 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자신의 이익과 습관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나만의 착각일까?) 그렇다면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일회용 컵을 생산, 판매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자본의 속성상 이는 현재로서는 제어 불가능하다. 둘째, 일회용 컵이 환경오염 유발 정도가 크므로 국가에서 이에 대해 세금을 부여함으로써 일회용 컵의 가격을 높이 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굉장히 친환경적인 마인드를 가진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도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일회용 컵’의 양산은 나의 생활을 편리하고 위생적으로 해 줄 뿐, 그로 인한 해악은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 혹은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둘째, 지속적으로 일회용 컵이 얼마나 환경을 해치는지 느끼고 깨닫게 해 주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을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교육은 결국 습관을 바꾸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느끼고 깨닫게 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환경교육은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습관을 바꾸지 못한다면 교육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교과 내용의 내면화로 그쳐서는 안 된다. 가치와 태도까지 바꾸어야 하고, 실천까지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다원화의 논리 속에서 교육의 풍토 역시 ‘특정 가치와 규범’의 학습을 매우 불편해 한다. 가치와 규범은 개인적이고 상대적이며, 그것이 옳다고 믿는 신념까지 형성되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우리가 가치 갈등이라고 여기는 쟁점들도 사실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하나의 가치를 기반으로 형성된 것으로서 가치 쟁점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경제적, 사회적 합리성을 따지는 것에 불과한 듯 하다. 어떻게 해야 좋은 교육이, 좋은 수업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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